아내를 서울로 보내며 꽃씨를 받다 아내를 서울로 보내며 꽃씨를 받다 권영상 토요일이다. 목요일에 내려왔으니 머문 지 사흘이 지났다. 안성의 밤은 위도가 낮은데도 서울보다 춥다. 그 대신 한낮의 볕이 굵고 곱다. 시골 볕이라 깨끗하고 환하다. 내려올 때마다 할 일을 싸들고 오는 바람에 좀 쉬자, 하면서도 쉬지 못한다..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3.10.28
음란한 상상 음란한 상상 권영상 앞산 숲위로 아침 해가 떠오른다. 창문을 연다. 싸아한 찬 기운이 들면서도 볕이 따스하다. 건너편 빈 밭이나 배추밭 배추 위로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서리가 내리느라 간밤이 추웠다. 집마당 잔디며 크로버 잎에 이슬이 반짝인다. 이슬이 굵다. 정말이지 보석 같은 이..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3.10.26
고춧대를 태우며 피어오르는 연기 고춧대를 태우며 피어오르는 연기 권영상 늦은 가을이라 밤이 춥다. 바깥의 가을밤도 춥지만 집안도 마찬가지다. 저녁을 먹고 방에 불을 튼다. 꼭 일 주일 만에 내려왔더니 비워둔 집이 싸늘하다. 방바닥도 차고 벽도 차다. 난방 기름을 넉넉히 넣어놓았지만 매양 불을 틀 수 없다. 20여분 ..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3.10.24
변할 줄 알았는데 변한 게 하나도 없어요 변할 줄 알았는데 변한 게 하나도 없어요 권영상 엊저녁이다. 퇴근하고 온 딸아이가 간밤에 꾸었다는 꿈 이야기를 했다. 오늘 하루도 다 지나갔으니 꿈 이야기를 꺼낸다면서.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갑자기 자동차가 저한테 달려들었다는 거다. 죽은 줄 알고 막 울다가 간신히..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3.10.20
조금 갖고도 행복할 수 있는 세상 <동시와 나> 조금 갖고도 행복할 수 있는 세상 권영상 1. 어기찬 생명 호박 구덩이에 뒷거름을 넣고 호박씨를 묻었다. 참 얼마나 기막힌 일인지 호박씨는 그 냄새나는 구덩이에서 푸른 깃발을 찾아들고 나왔다. <동시와 나>라는 주제를 앞에 놓고 생각을 해봅니다. 내게 있어 동시..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3.10.18
트럼펫소리에서 향수가 인다 트럼펫소리에서 향수가 인다 권영상 화요일 오후, 베란다에 나가 창밖을 본다. 태풍이 가고난 뒤의 하늘이 파랗다. 눈이 어리다. 더 이상 직장이 싫어 직장을 집어던지고 나왔지만 이런 날엔 손가락만한 직장이라도 있어줬음 싶다. 미워하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일 때문에 내가 좀 긴장해 ..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3.10.10
버스커버스커, 수채화 같이 가벼운 도시의 사랑 버스커버스커, 수채화 같이 가벼운 도시의 사랑 권영상 눈부신 오후의 창문을 열 때 커텐 자락이 바람과 함께 내 얼굴을 휩싼다. 그러고는 또 언제 그랬냐 싶게 슬그머니 제 자리로 돌아갈 때 내 눈에 보이던 파란 하늘. 구름 한 장 없는 하늘이지만 선을 긋고 간 제트비행기의 하얀 금처럼..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3.10.03
가을 풍경 속에서 만난 사나이 가을 풍경 속에서 만난 사나이 권영상 가을볕이 참 아깝다. 나 모르게 들판으로 쏟아지는 가을볕이 꼭 내 것 같아 그냥 있지 못하겠다. 하던 손을 놓고 신발을 곧추 신었다. 그리고는 마실 너머 고래골로 향했다. 여섯 집이 모여 있는 마실 고샅을 지나다가 담장이 온통 수세미 꽃인 집을 ..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3.09.26
가을은 교미의 계절 가을은 교미의 계절 권영상 곤충들에게 있어 가을은 교미의 계절이다. 마당 잔디밭에 나가 잠시만 앉아보면 교미 중에 있는 벌레들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녹색의 몸을 한 암수 두 놈이 녹색 풀밭에 저들 몸을 숨기고 은밀히 교미를 한다. 손으로 풀 위를 쓱 헤집으면 이들은 방해자의 방..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3.09.22
이 자리를 떠나면 나의 얼굴이 보인다 이 자리를 떠나면 나의 얼굴이 보인다 권영상 서울에 집을 두고 안성에 혼자 내려가 산 지 꼭 한 달 됐다. 안성 어느 산골짜기에 조그마한 집 하나를 얻어 삼복더위에 이사를 했다. 집 앞에는 농사를 짓는 농가 다섯 집이 있고, 집 뒤에는 외지에서 들어와 사는 전원주택들이 있다. 전원주..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013.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