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8

숨바꼭질

숨바꼭질 권영상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숨바꼭질을 좋아했지. 그때에도 아빠는 술래였고, 나는 아빠가 하나. 둘. 서이. 너이...... 세는 동안 엄마 치마 뒤에 숨었지. 아니 엄마 무릎 뒤에 숨었지, 아니 종아리 뒤에, 아니 머리칼 속에 옹크리고 숨었지. 아빠는 못 찾겠다며 나와라! 나와라! 소리쳤고, 나는 요깄지! 하고 나온다는 게 그만 깜빡 잊고 응애응애응애, 울며 나왔지. 열 달을 숨어 지내다가. 나는 지금도 숨바꼭질을 좋아하지. 술래는 물론 아빠지. 2022년 8월호

아빠 그쵸

아빠 그쵸 권영상 아빠, 먼데서 보면 아빠도 저도 반짝이는 별이라는 그분의 말씀, 생각해 보니 맞죠. 그쵸? 외로워해 본 적 있는 사람은 제 마음 속 별을 본다는 그 말씀도요. 그쵸? 아빠, 달팽이도 솔부엉이도 사람처럼 마음 속에 별이 있는거죠. 그쵸? 요 조끄마한 콩벌레도 물론 별이겠죠? 그쵸? 그렇구말구. 아빠! 그러고 보니 세상에 별 아닌 게 없네요. 그럼. 다 소중하지. 2021.

겨울

겨울 권영상 겨울이면 이가 아팠지. 아파도 꼭 해질 무렵부터 아프기 시작했지. 처음엔 아야, 하던 것이 아이구 아야, 하고 나중엔 아이구 죽겠다, 나뒹굴었지. 아픈 이가 쏙쏙쏙 나를 들볶을 무렵 엄마는 급기야 당신은 뭐해! 애가 아파 죽겠다는데! 호통을 쳤지. 그제야 아빠는 추리닝 바람으로 약을 사러 나가고, 내가 0.5리터 한 병쯤 눈물을 폭 쏟고나자 덜덜덜 떨며 돌아왔지. 약국들 문 다 닫았어! 다 돌아다녀 봐도! 조금 불쌍하긴 해도 나는 아빠가 밉지는 않았지. 밉다면 내 이빨을 긁어먹는 벌레가 밉지. 겨울이면 지금도 그렇지. 아빠를 고생시키려고 이 아파도 꼭 해질 무렵부터 아프지. 아이구 아야, 나를 울게 하지. 2020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