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권영상
겨울이면 이가 아팠지.
아파도 꼭 해질 무렵부터 아프기 시작했지.
처음엔 아야, 하던 것이
아이구 아야, 하고
나중엔 아이구 죽겠다, 나뒹굴었지.
아픈 이가 쏙쏙쏙 나를 들볶을 무렵
엄마는 급기야 당신은 뭐해! 애가 아파 죽겠다는데! 호통을 쳤지.
그제야 아빠는
추리닝 바람으로 약을 사러 나가고,
내가 0.5리터 한 병쯤 눈물을 폭 쏟고나자
덜덜덜 떨며 돌아왔지.
약국들 문 다 닫았어! 다 돌아다녀 봐도!
조금 불쌍하긴 해도
나는 아빠가 밉지는 않았지.
밉다면 내 이빨을 긁어먹는 벌레가 밉지.
겨울이면 지금도 그렇지.
아빠를 고생시키려고
이 아파도 꼭 해질 무렵부터 아프지.
아이구 아야, 나를 울게 하지.
<동시먹는 달팽이> 202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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