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

도랑물에 띄우는 종이배

도랑물에 띄우는 종이배 권영상 안성에 내려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아내가 쑥 타령이다. 쑥을 캐기엔 지금이 적당한 시기다. 지금이란 벚꽃이 지고 복숭아 과수원의 복사꽃이 분홍으로 필 때다. 아내의 머릿속엔 지난해 이즈음에 캐던 봄쑥이 단단히 입력되어 있거나 아니면 시절을 이해하는 힘이 생긴 듯하다. 멀쩡한 사내가 여자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쑥을 캐는 게 마음 내키지는 않지만 그걸 거절할 배짱도 내겐 없다. 아내를 따라 시장 가방에 음료수며 간식거리를 넣어 들고 지난해에 캐던 그 논벌 그 논둑으로 나갔다. 물을 받아놓아 논엔 물이 찰랑거렸고, 논둑엔 민들레며 냉이 쑥이 한창 크고 있었다. "우리 논엔 약 안 치니까 얼마든지 캐세요. “ 지난해다. 우연히 이 논둑에서 논둑 손질을 하는 주인어른을 만났다. 나는..

4월 길

4월 길 권영상 길을 걸어온 네 머리 위에 꽃잎이 내려앉았다. 네 어깨 위에도. 나는 네가 걸어온 4월 길을 안다. 그 길은 곧고 뽀얗다. 그 길은 때로 보릿잎처럼 파랗고 한들거린다. 너는 그 길을 걸어왔다. 4월 길엔 하늘에서 꽃이 내려온다. 힘들게 겨울을 참아낸 사람들을 위해 보내는 선물이다. 지금 네 머리 위에 앉은 꽃잎을 보렴. 얼마나 향긋하고 예쁜지.

꽃숲에서 동박새를 만나다

꽃숲에서 동박새를 만나다 권영상 4월, 꽃이 지천이다. 겨울을 견뎌낸 목숨들을 위해 자연이 보내는 찬사가 아닐까 싶다. 작은 미물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겨울이란 누구에게나 혹독하다. 목숨을 위협하는 추위와 미물들에게 물 한 방울 내어주지 않는 건기의 목마름은 잔인하다. 먼 바다 건너 남지나 반도에 사는 각시메뚜기는 바람을 따라 북상해 우리나라에서 어른벌레로 겨울을 난다. 그들은 다른 곤충들이 알을 낳고 떠나는 것과 달리 낙엽더미나 돌틈에서 맨몸으로 추위의 강을 건넌다. 추위가 한계점에 이르면 몸안의 체액이 얼어 죽고 마는 각시메뚜기의 눈 밑에는 지워지지 않는 슬픈 눈물자국이 있다. 4월에 피는 꽃은 그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축복의 선물이다. 마을마다 꽃이 한창이다. 매화가 피더니 산수유가 피고, 살구꽃..

4월이 오면

4월이 오면 권영상 4월이 오면 마른 들판을 파랗게 색칠하는 보리처럼 나도 좀 달라져야지. 솜사탕처럼 벙그는 살구꽃 같이 나도 좀 꿈에 젖어 부풀어 봐야지. 봄비 내린 뒷날 개울을 마구 달리는 힘찬 개울물처럼 나도 좀 앞을 향해 달려봐야지. 오, 4월이 오면 좀 산뜻해져야지. 참나무 가지에 새로 돋는 속잎같이. 권영상 동시집 사계절출판사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