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7

할머니의 손

할머니의 손권영상  내가 아플 때할머니는 사과 속을 긁어주셨지. 잠자리에 누운 나를 앉혀놓고숟가락으로사각사각 사과 속을 긁으시던 손. 아, 하렴!이윽고 달콤한 사과속을내 입에 넣어주실 때나는 간신히 받아 꼴깍, 넘겼지. 꼴깍! 그 소리에할머니는 내가 살아있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오올치! 하시며사과속이 묻은 내 입가를 훔쳐주셨지.   2024년 14집

요즘 우리 할머니

요즘 우리 할머니 권영상 할머니 옷장 서랍을 연다. 하나 둘 사라지던 내 연필과 지우개가 거기서 나온다. 꽃삽이 나오고 그렇게 찾아도 없던 할머니 구두가 나온다. 할머니는 요즘 할머니의 세상을 서랍 속에 만들고 있다. 묵은 탁상달력, 빈 콜라병, 신으시던 양말, 믹스커피 봉지……. 요즘 할머니 세상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 서랍만해지고 있다. 2023년 봄호

내가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

내가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 권영상 내가 예전에 할머니에게 들은 옛날이야기들은 다 똑 같았지요. 맨 마지막은 행복하게 끝났지요. 처음엔 슬프다가도 맨 끝에 가면 언제나 행복했지요. 할머니, 또 행복하게 끝나는 거야? 할머니 무릎에 누운 채 투덜대면 할머니는 이 말씀을 하셨지요. 그래. 세상 모든 일의 끝은 다 행복하단다. 우리 강아지 인생도 그럴 테지. 나는 지금도 할머니의 그 말씀을 믿지요. 세상 모든 일의 끝은 다 행복하다는. 권영상 동시집 사계절출판사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