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 6

어머니와 뒤란 풍경

어머니와 뒤란 풍경권영상 연일 더위다.한낮 더위에 사람들처럼 쉬다가 해 지면 기다렸다는 듯 붉게 피어나는 꽃이 있다. 분꽃이다. 그들은 저녁 하늘 별이 뜨는 때를 기다려 꽃 핀다. 그때가 되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분꽃 향기를 따라 박각시가 날아온다. 여름날엔 백일홍이 피고, 맨드라미, 봉숭아가 피고 배롱나무꽃이 저 보란 듯 붉게 핀다. 점심을 마치고 창문을 연다.요 닷새 전부터 창밖 참나리가 한창 꽃을 피운다. 고향집 뒤란에도 여름이면 참나리꽃이 붉게 폈다. 뒤란 담장 곁엔 석류나무가 섰고, 장독대 곁엔 장독을 감싸듯 참나리꽃이 가득 폈다. 가끔 집을 찾아가면 방문이 열린 채 집이 비어있을 때가 있다. 마당에 들어서서 어머니가 계시나 하고 안방을 보면 안방 문이 활짝 열려있다. 그 너머 뒷방으로 가..

파프리카를 기다리며

파프리카를 기다리며권영상 텃밭에 파프리카를 심었다. 한두 포기도 아니고, 첫 작물치고 열한 포기나 심었다. 아삭고추 열네 포기와 합치면 적지 않은 양이다. 쪼끄한 텃밭에 별별 작물을 다 심어본다. 처음 안성에 내려올 땐 가볍게 상추 쑥갓 고추 정도 심으며 살리라 했다. 그러다가 감자 조금, 대파 조금, 배추 조금 무 조금, 강낭콩 조금, 콩 조금. 이렇게 가짓수가 늘어났다. 주로 내가 잘 알고 낯익은 작물들이다. 그렇게 한 3년쯤 지나자, 그 일이 무료해졌다. 잘 아는 방식으로 반복하는 농사에 흥미를 잃으면서 낯선 작물을 하나 둘 끼워넣기 시작했다. 그 첫 작물이 토란과 순무다. 처음 대하는 작물들이라 우선 공부부터 했다. 토란과 순무 재배 경험이 있는 영남이거나 강화 쪽 사람들과 이들 작물에 대한 ..

나는 너무도 호야꽃을 몰랐다

나는 너무도 호야꽃을 몰랐다권영상 베란다 꽃병에 꽃 폈다.꽃병은 꽃병인데 배부르고 커다란 유리꽃병이다. 꽃병에 꽃 폈다는 게 뭔 대수일까. 그러나 흙 화분의 꽃이라면 모르겠으나 물병에 눌러살던 식물이 꽃폈다면 좀 다르지 않을까.“아이비에 물 갈아줘야겠는데.”우리는 그 식물을 아이비라고 불렀다.물 갈아준 지 오래되면 꽃병 안쪽에 파랗게 이끼가 낀다. 실내공기를 정화 시켜준다는 말에 방안에 들여놓고 창 쪽으로 덩굴을 올리던 그 아이비. 그 아이비가 언제 우리집에 왔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 우리 식구 중 누군가가 어디서 한 가지 얻어온 거겠다. 그걸 물을 채운 유리꽃병에 담가놓고 산 지 10여 년쯤 됐다.언제부터인지 그의 자리는 베란다 창가다. 작은 항아리만한 유리꽃병에 한번 물을 채워주면 몇 달은 가니까..

감자를 캐다

감자를 캐다권영상 오늘 감자를 캐기 위해 어제 아내와 함께 내려왔다.없던 비 소식이 자고 나니 인터넷에 떴다. 낭패다. 텃밭에 나와 감자밭 감자 순을 살펴보지만 감자 캐기에 좀 이른 감이 없지는 않다. 달력을 보면 지난 몇 해 동안 이 무렵, 그러니까 하지가 지나고 7일쯤 뒤 6월 말에 감자를 캤다. 근데 올핸 아직 감자 순이 굵고 푸르다. 게다가 비까지 온다니 비를 핑계삼아 내일로 미룰까 하는데 아내가 호미를 집어 든다. “비 안 와.”어떻게 아느냐는 내 말에 청개구리 우는 소리 들어봤냔다.가까이에 있는 일기예보관을 두고 먼데 있는 기상청 예보를 믿는 내가 어리석었다.감자 고랑에 들어섰다.올해 궁금한 건 감자씨에 따른 감자 수확이다.지난 3월 감자씨를 넣을 떄다. 종묘가게에서 사온 2킬로그램짜리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