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시 참깨동시 481

젤로가 사라졌다 (연재 16)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다   12. 유화부인  압록강 가의 봄  강물엔 신이 살았다.물을 다스리는 신, 하백.수선화가 피는 하백의 집엔 예쁜 딸이 셋 있었다.하유화, 하위화, 하훤화.“봄볕이 고우니 어디든 나가 놀다 오렴.”아버지 하백은 딸들에게 파랗게 흐르는 압록강의 봄을 보여주고 싶었다.유화는 동생들을 데리고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강가로 나갔다.치마를 걷고 강물에 들어서서발을 씻고 있을 때다.건장한 청년 하나가 수선화 피는 강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다.그는 강을 건너와 유화 앞에 섰다.금방 꺾은 수선화 꽃묶음을 건넸다.“나는 천제의 아들 해모수요.”청년의 말소리가 봄풀 같이 풋풋했다.“알고 있다오. 북부여의 가장 멋진 남자라는 것도.”유화의 말에 청년 해모수가 빙그레 웃었다.유화가 자기 소개를 했다.“..

할머니의 손

할머니의 손권영상  내가 아플 때할머니는 사과 속을 긁어주셨지. 잠자리에 누운 나를 앉혀놓고숟가락으로사각사각 사과 속을 긁으시던 손. 아, 하렴!이윽고 달콤한 사과속을내 입에 넣어주실 때나는 간신히 받아 꼴깍, 넘겼지. 꼴깍! 그 소리에할머니는 내가 살아있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오올치! 하시며사과속이 묻은 내 입가를 훔쳐주셨지.   2024년 14집

연작시 <산수유꽃>

산수유꽃권영상1. 경사리 산수유분이야, 봄이 왔더레이. 경기도 광주군 백사면 경사1리, 643미터 원적산 산 아래 마을로 봄이 한창 왔더레이. 와도 참 억수로 왔더라. 소복히 사는 오십 호 쪼깐한 안마당과 비좁은 밭둑길, 밋밋한 산비탈로 와도 와도 참 오달지게도 왔더라. 전투 비행기가 마음먹고 탕, 던져버린 폭탄 있지 않느냐? 그 폭탄 터지느라 풍기는 독한 화약 연기처럼 산수유꽃 뭉게뭉게 마을을 덮었더레이. 향기는 또 얼마나 진하더냐 하면 말이다. 분이 네가 추운 독감으로 아스피린 먹고 밤 새워 어릿어릿하던 때 있었지? 그때 깜물 맡았다던 옛 일기장에 밴 매운 향기, 그 향기 같더라. 새삼 놀란 것은 봄이 와도 딴 데는 모두 두고 경사리만 딱 요렇게 골라오시는지, 몰라도 참말 모를 일이더레이.2. 산수유..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15)

(월요 이야기 동시 연재)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다  11. 선화공주와 서동  아버지가 용이었다  어둠이 수북수북 내리는 밤.풀잎 오두막집 앞 연못물이 흔들리면서 그 속에서 용이 나왔다.용은 몰래 풀잎 오두막집에 숨어 들어갔다.그리고 새벽닭이 울 때쯤오두막집에서 나와 연못물을 흔들며 조용히 못 속으로 사라졌다.그 후, 풀잎 오두막집에서 애기 울음소리가 났다.사내아이였다.아이는 이름도 없이 풀잎처럼 자랐다.아버지가 누구냐, 물으면 아버지가 용이라 했다.이름도 없는 풀잎 오두막집 아이는 어머니랑 둘이 뒷산에서 마를 캐어 먹고 살았다.마를 캐어 먹고 산대서 사람들은 풀잎 오두막집 아이를 맛둥방, 서동이라 불렀다.   소문이 국경을 넘어오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님이 그리 예쁘다네.”“예쁘기만 할까. 마음..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14)

(월요 이야기동시 연재)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14)  이야기의 바다를 건너다 10. 처용 역병  신라 헌강왕, 그 시절의 3월은 울담마다 살구꽃이 피었다.왕은 살구꽃 피는 마을 너머 개운포 바다가 떠올랐다.“3월 바다가 보고 싶도다!”왕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도 그럴 것이 왕에겐 고민이 있었다. 역병이다. 역병은 백성을 괴롭혔다. 역병이 휩쓸고 간 자리엔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고 쓰러졌다. 왕도 신하도 마음 놓을 날이 없었다. 그런 때였으니 3월 봄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말도 괜한 말은 아니다.짬을 낸 어느 날, 왕은 신하들과 개운포 바다에 이르렀다.살구 꽃잎 지는 분홍 봄 바다는 풍랑 뒤처럼 잔잔했고, 지친 몸이 차츰 살아날 무렵,왕은 떠나온 경주로 다시 무거운 행렬을 돌렸다.사건은 바로 그때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