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9

나비를 기다리며

나비를 기다리며 권영상 그간 장마가 길었다. 폭염도 심했다. 그런 탓일까. 나비가 통 보이지 않는다. 한번 비 왔다 하면 그냥 비가 아니라 폭우가 쏟아졌고, 한번 더웠다 하면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올여름은 유난했다. 그러니 나비 같이 약한 생명들이 견뎌내기 힘들었을지 모른다.올여름이 얼마나 유난했냐 하면 그 독하던 미국선녀벌레가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어느 때에 문득 사라졌다. 미국선녀벌레란 2009년에 우리나라에 유입 된 해충으로 나무들 어린 가지에 하얗게 내린 눈처럼 달라붙어 즙을 빠는 벌레다. 알에서 깨어나 조금 자라면 선녀같이 하얀 날개로 톡톡 날아다니고, 이게 성충이 되면 탈피하여 작은 매미처럼 온갖 나무에 촘촘히 달라붙어 수액을 빤다. 이들 때문에 농촌이 너남없이 몸살을 앓는 형편이다. 농약으..

꽃씨 온상을 만들며

꽃씨 온상을 만들며 권영상 쯔박쯔박쯔박쯔박! 모과나무에 날아온 박새가 요란하게 운다. 목소리가 또렷하면서도 울음이 길다. 조금 전에 안성으로 내려왔다. 적막이 도는 시골 뜰안에 난데없이 박새 소리라니! 마치 어느 낯선 별에 도착한 듯 신비한 느낌이다. 보통 때는 쯔박쯔박, 두 박자씩 끊어 우는데 지금은 아니다. 연속적으로 운다. 울음소리에서 뭔가 막 다가오는 임박함과 다급함이 묻어난다. 가까이 밀려들어오는 봄 탓인 듯하다. 박새 마음이 바빠진 것 같다. 머지않아 짝을 만나고,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새끼 칠 일을 생각하는 모양이다. 바깥 기둥에 달아놓은 온도계를 본다. 영상 16도다. 박새를 따라 나도 괜히 마음이 바빠진다. 이맘쯤에 해야 할 일이 있다. 꽃씨 온상이다. 꽃씨 온상을 하는 김에 내처 그..

멋을 아는 동네 새들

멋을 아는 동네 새들 권영상 가끔 뜰 마당에 박새가 놀러온다. 내가 혼자 안성에 내려와 우두커니 사는 사정을 박새가 모를 리 없다. 오늘도 동무삼아 나를 찾아와 내가 사는 뜰을 노크한다. 쪼빗쪼빗쪼빗! 나는 가만 일어나 창밖을 내다본다. 한창 꽃 피는 뜰앞 배롱나무 가지에 와 앉았다. 집안을 향해 나를 부르듯 노래한다. 언제 들어도 목청이 또랑또랑하다. 첫눈 내릴 무렵이라든가 가을비 내릴 무렵에 듣는 목청은 왠지 내 마음을 울적하게 한다. 박새 목소리엔 묘한 감정이 스며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목소리가 무르익어 제법 멋을 부린다. 목소리 끝을 길게 끌어올린다거나 똑똑 끊는 멋을 낸다. 뜰을 환하게 밝히는 배롱나무 고운 꽃 탓이겠다. 목청도 그렇지만 의복 또한 반듯하다. 쓰고 온 모자도 반듯하거니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