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풀씨는 없다
권영상
올해도 지난 해 그 자리에 제비꽃이 피고 졌지요. 달라진 거라면 제비꽃이 조금 더 영토를 넓혔다는 겁니다. 씨앗주머니를 터뜨리는 순간 씨앗들이 튕겨지며 자유롭게 달아났을 테지요. 이쪽 바위틈에서 저쪽 바위틈까지. 물도랑을 건너 우리 집 담벼락 밑까지 날아와 상추포기처럼 여기저기 포기를 벌이고 있습니다.
텃밭 모퉁이엔 한번 심은 해바라기가 이듬해부터 절로 나와 저렇게 절로 큽니다. 5년 전, 제가 여기 와 살던 첫해 겨울입니다. 아니 겨울로 들어서는 12월의 중순쯤입니다. 눈이라도 올 듯이 하늘이 꾸물꾸물 무거워지고 있을 때지요. 저쪽 들판을 황급히 날아온 박새가 텃밭 모퉁이 말라버린 해바라기 줄기에 앉더니 마른 꽃판에 거꾸로 매달려 꽃씨를 뒤졌지요. 용케 해바라기 꽃씨 하나를 건졌는지 또 급히 어디론가 날아갔습니다.
박새를 뒤쫓아온 것처럼 이윽고 첫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박새는 큰눈이 내릴 걸 직감했겠지요. 씨앗 하나라도 더 찾아내야할 절박감이 있었겠지요. 다급히 우리 집에 왔다가 다급히 갔지요. 그렇게 긴 겨울이 다 갈 즈음에 해바라기 줄기를 보니 비와 눈에 젖고 마른 꽃판이 이지러진 빈 양은그릇처럼 흉했습니다. 제가 가진 것을 삼동 내내 새들에게 탈탈 털어준 탓이지요.
놀라운 것은 그런데도 그 자리에 또다시 해바라기 꽃씨가 올라온다는 거지요. 새들 부리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씨앗 하나쯤은 있었던 거지요. 자연은 그 하나는 살려두는 모양입니다. 생존의 숱한 고난 속에서도 대를 이어가도록 손을 써주는 자연의 배려가 눈물겹습니다.
그 후, 나는 텃밭 모퉁이 땅을 아예 해바라기에게 내주었습니다. 그곳은 작지만 해바라기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영지를 받은 해바라기라 해도 저 혼자 그 땅을 차지하지는 않았네요. 가을하늘이 잉크 빛처럼 파래지는 어제 여태 안 오던 아내가 내려왔습니다.
“여기 달개비 꽃 좀 봐! 너무 예쁘네.”
아내가 해바라기의 영지를 들여다보며 놀랍니다. 달개비꽃이란 말에 나도 다가갔지요. 내 눈에 안 보이던 달개비 파란 꽃이 아내 눈엔 보였습니다. 초록덩굴 속에 가을 하늘을 닮은 파란 꽃입니다. 꽃빛이 눈에 어려 허리를 숙여 똑똑히 보아야 보이네요. 얼룩 하나 없는 순 파란색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지난해에도 이 자리에 달개비가 살았을 테고 늦은 가을 작은 씨앗을 촘촘히 털어놓았겠지요. 그걸 개미들이 찾아내고, 눈이 반들거리는 참새가 물어가고 그래도 남는 걸로 살아남아 파란 홑이불로 감싸듯 텃밭 모퉁이를 감싸고 있네요.
어떨 땐 풀을 뽑는다며 머리채를 휘어잡듯 잡아 뽑을 때도 있지요. 내가 힘에 부칠 때에 보면 마구 손을 댑니다. 그러나 몸이 튼튼히 다져지면 내 몸에 숨은 가녀린 또 다른 내가 나타나 흔히 보는 풀꽃이며 풀잎 모양에 감탄을 하지요.
바랭이 쇠비름 방동사니도 지난해 이 자리에 떨어진 풀씨가 자라난 것들입니다. 한번 땅에 떨어진 풀씨는 어둔 밤 저녁 별처럼 반드시 살아나옵니다. 올해에 못 올라오면 조건이 맞는 내년에, 그렇잖으면 5년 6년 뒤에라도 꼭 나오는 걸 토끼풀씨를 통해 겪었습니다. 풀씨의 봄과의 위대한 약속 때문입니다. 크건 작건 생명이 살아남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책임 지워진 임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그 무엇도 만만한 것이라곤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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