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개미와 설탕

권영상 2017. 8. 28. 12:55

개미와 설탕

권영상




어느 날, 나는 보았다. 냉장고 밑에서 기어나오는 개미들을. 이들은 볼볼거리며 반쯤 열린 작은방으로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웬 개미들! 하며 방문 뒤쪽을 슬쩍 보고는 더 이상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작은방은 창고방이나 마찬가지라 벽을 따라 놓아둔 감자상자와 마늘상자, 씨앗통이며 쟁기통, 화장지보따리 등속이 있다. 개미가 가는 통로를 끝까지 살피려면 그걸 다 치워야 한다. 나는 문을 닫으며 함께 사는 거지뭐 했다.



그런데 단순한 사건도 시간이 흐르면 복잡해진다. 한두 마리씩 다니던 개미가 아주 거대한 행렬을 이루기 시작했다. 어느 날엔가 보니 그들은 왕복 2차선으로 질서정연하게 오가고 있었다. 약간 섬뜩했다. 이번에는 작은방에서 나온 개미들이 냉장고 밑을 지나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살폈다. 주방 조리대 밑에 둔 쓰레기통이 목적지였다. 음식을 조리하느라 생긴 부산물을 버리는 통이 그 통이다. 개미들은 거기에 이르기 위해 작은방에서 나와 컴컴한 냉장고 밑을 기어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밥풀을 물어 나를까? 떨어진 밥풀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던 것을 떠올렸다. 아니라면 홍당무나 삼겹살 부스러기? 설마 양파껍질을 둘러메고 가지는 않았을 거다. 아무리 내 눈의 시력이 옛날 같지 않다 해도 그쯤이야 못 보겠는가. 나는 돋보기를 찾아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개미행렬을 살폈다. 돋보기에 잡힌 그들 턱에 물린 정체모를 반짝이는 물질! 아, 그거였다. 설탕이었다. 그들은 설탕 알갱이를 물고 돌아가고 있었다.



설탕병의 뚜껑을 열고 훔쳐 나른다? 나는 개미들을 의심했다. 그러나 원인제공자는 나였다. 봉지커피의 설탕 일부를 봉지째 그냥 버렸는데 개미들이 그걸 탐지해 낸 거다. 나는 죄짓는 심정으로 휴지에 물을 묻혀 개미들을 휩싸 쓰레기통에 버렸다. 일군의 행렬이 귀환하지 않으면 더 이상 이들을 내보내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더 많은 개미들이 기어나왔고, 심지어 야음을 틈타 나타났다. 그들 배후에 권력자 여왕개미가 있는 게 분명했다. 일개미들이 그동안 물어 나른 설탕은 여왕개미가 차지했을 테고, 그는 설탕의 달콤한 맛에 빠졌을 테다. 그러니 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단맛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싸움은 이제 여왕개미와 나의 싸움이 되고 말았다.



나는 쓰레기통을 깨끗이 비우고, 봉지커피에 대한 유혹을 단념했다. 그러나 여왕개미의 설탕에 대한 탐욕은 멈추지 않았다. 개미들은 조리대로, 식탁 위로 기어올랐다. 그들의 배후가 보내는 설탕을 찾아내려는 척후병임이 틀림없었다. 여왕개미는 끊임없이 자신의 일개미들을 내보냈고, 이들은 내 손이 저지르는 공포를 알면서도 험지로 내몰렸다.

이 모든 건 나의 불찰에서 시작되었다. 더 이상의 희생을 막으려면 개미집으로 가는 통로를 찾아 입구를 봉쇄하는 일 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다고 한번 맛들인 설탕에 대한 탐욕을 포기할까. 어떻든 여왕개미의 탐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의 평화는 없다.


생각해 보면 내 안에도 여왕개미가 있다.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불굴의 욕심과 그 때문에 마음의 평화를 잃어가는 불행한 여왕개미. 무엇보다 나는 먼저 그와 싸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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