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줄박이 6

사람을 더 믿는 새들

사람을 더 믿는 새들 권영상 차를 몰고 다랑쉬오름을 향해 달려 갈 때부터다. 조금씩 내리던 눈발이 거칠어졌다. 오름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겉잡을 수 없을 만큼 눈과 바람이 휘몰아쳤다. “저기 저 조그마한 오름이나 가 보고 말지 뭐.” 아내가 눈보라 사이로 보이는 아끈다랑쉬 오름을 가리키며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이런 날 다랑쉬오름을 오른다는 건 내가 보기에도 무리인 듯했다. 할 수 없지 뭐, 하고 차에서 내리는데 무슨 까닭인지 눈보라가 조금씩 누그러졌다. 나는 아내를 달래어 꼭 한번 가 보고 싶었던 다랑쉬오름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좁은 계단 길을 걸어 오를수록 바람은 제주 바람답게 거세었다. 달리 바람을 피해 오를 수 있는 길은 없어 보였다. 계단 길 주변의 나무들도 바람 때문인지 키가 작았다. ..

한 해를 마무리 하며

한 해를 마무리 하며 권영상 점심을 먹고 창문을 연다. 오늘따라 길 건너편 범우리산의 까치집들이 또렷이 보인다. 산이라지만 산들과 뚝 떨어진, 바다로 말하자면 섬 같은 조그마한 산이 범우리산이다. 주로 참나무들이 모여산다. 잎이 무성할 땐 몰랐었는데 잎 다 지니, 품고 살던 까치집이 또렷이 드러난다. 모두 세 채다. 덩그러니 크다. 밤이면 그 산에 부엉이가 와 운다. 처음엔 혼자 듣는 부엉이 소리가 무서웠다. 그러나 지금은 자다가도 창문을 빠끔 열어두어 숲에서 우는 부엉이 소리를 듣는다. 잠이 안 올 때나 생각이 자꾸 깊어질 때 그때 울어주는 부엉이소리는 반갑다. 눈 내리는 새벽 추위에 최씨 아저씨네 소가 움머, 움머, 목이 쉴 정도로 울 때도, 싸늘한 하늘에 달이 혼자 외로울 때도 부엉이는 동행하듯 그..

멋을 아는 동네 새들

멋을 아는 동네 새들 권영상 가끔 뜰 마당에 박새가 놀러온다. 내가 혼자 안성에 내려와 우두커니 사는 사정을 박새가 모를 리 없다. 오늘도 동무삼아 나를 찾아와 내가 사는 뜰을 노크한다. 쪼빗쪼빗쪼빗! 나는 가만 일어나 창밖을 내다본다. 한창 꽃 피는 뜰앞 배롱나무 가지에 와 앉았다. 집안을 향해 나를 부르듯 노래한다. 언제 들어도 목청이 또랑또랑하다. 첫눈 내릴 무렵이라든가 가을비 내릴 무렵에 듣는 목청은 왠지 내 마음을 울적하게 한다. 박새 목소리엔 묘한 감정이 스며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목소리가 무르익어 제법 멋을 부린다. 목소리 끝을 길게 끌어올린다거나 똑똑 끊는 멋을 낸다. 뜰을 환하게 밝히는 배롱나무 고운 꽃 탓이겠다. 목청도 그렇지만 의복 또한 반듯하다. 쓰고 온 모자도 반듯하거니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