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사람 사이의 거리

권영상 2017. 11. 27. 21:28

사람 사이의 거리

권영상

    

 


아침 식사를 끝내고 일어설 때다. 창가에 새가 날아와 운다. 새소리에 귀가 삐죽 선다. 소리가 똑똑하다. 식사를 마치거든 만나자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수저를 놓자, 찾아온 새가 반가워 창밖을 본다. 새는 창밖 난간에 놓아둔 화분에 앉았다. 가슴이 붉은 작은 새다. 내 눈과 마주치는 순간 그만 홀짝 날아간다.

“곤줄박이였어!”

그제야 나는 소리쳤다근데 날아간 곤줄박이가 이내 돌아왔다. 이번엔 동무를 데리고 왔다. 나는 한 걸음 떼어놓던 발을 그대로 둔 채 얼어붙듯이 서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놓여있던 옷장처럼, 아니 텔레비전처럼, 아니 모자걸이처럼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눈동자라도 움직이면 새가 날아갈 것 같았다.



이럴 땐 내가 새라면 좋겠다.’

나는 곤줄박이가 날아갈까 걱정이었다.

곤줄박이가 앉은 화분은 마삭줄 화분이다. 향기가 진하고 단풍이 예쁘다. 거기 가끔 쌀 씻은 쌀뜨물을 주느라 딸려나간 쌀알을 곤줄박이가 발견한 모양이다. 저들이 지금 먹이를 쪼아먹고 있는 거라면 그 쌀알들이다.

이쪽을 할끔 보던 곤줄박이가 폴짝 또 날아가고 말았다. 새와 나의 만남은 그렇게 짧았다. 불과 5,6. 쌀알 서너 톨을 주어먹을 그 사이, 나의 숨소리라도 들었는지 새는 날아갔다. 기다렸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곤줄박이라는 새가 이름과 달리 예쁘네.”

아내가 내 뒤에 와 새를 보고 있었다. 아내의 움직임에 새가 달아났나 보다.

나는 거실 문을 열고 창밖 난간에 둔 마삭줄 화분을 넘겨다봤다. 마른 낱알 몇 톨을 그대로 두고 그들은 날아갔다.

거실로 돌아와 곤줄박이를 바라보던 그 자리에 다시 섰다. 여기에서 새가 앉아있던 저기까지의 거리. 새와 내가 조심스럽게나마 공존하던 거리는 이쯤이었다. 이 거리가 깨어진다고 하는 순간, 새는 남은 몇 톨의 쌀알을 포기하고 가버렸다.



문득 나와 헤어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혹시 이 조심스러운 거리의 균형이 깨어지면서 나와 헤어진 건 아닐까. 휴대전화에 기록되어 있지만 일 년이 가도 단 한 번 통화 내역이 없는 사람들. 그중엔 한 때 죽네 사네 하던 친구도 있다. 촌수가 멀어지면서 남이 된 사람도 있다. 이제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린 사람들. 한 때는 가까웠는데, 한 때는 허물없이 지냈는데, 그 가까움이, 그 허물없는 사이가 천천히 불편해지는 동안 우리는 서로 멀어지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한 해가 다 기울어 간다. 내 곁을 떠나가 이제는 아주 멀어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어디로 가 또 누구의 친구가 되어 있을까. 서로 거리를 맞추느라 커피를 마시고, 함께 걸어도 보고, 대화도 나누어 보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또 누구의 곁으로 다가가고 있는 걸까.

좋은 인간관계를 오래 잘 유지하는 일이란 실은 어렵다. 그건 이 아침 내게 날아온 곤줄박이와 나의 만남처럼 조금치의 거리감만 깨어져도 달아날 만큼 위태롭다. 인간관계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너무 인간관계에 의존할 것까지는 없다. 자신이 관심 갖는 분야 이상의 인간관계를 원하는 일은 분명 어리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