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한 해를 마무리 하며

권영상 2020. 12. 24. 13:14

 

한 해를 마무리 하며

권영상

 

 

점심을 먹고 창문을 연다.

오늘따라 길 건너편 범우리산의 까치집들이 또렷이 보인다. 산이라지만 산들과 뚝 떨어진, 바다로 말하자면 섬 같은 조그마한 산이 범우리산이다. 주로 참나무들이 모여산다.

잎이 무성할 땐 몰랐었는데 잎 다 지니, 품고 살던 까치집이 또렷이 드러난다. 모두 세 채다. 덩그러니 크다. 밤이면 그 산에 부엉이가 와 운다.

 

 

처음엔 혼자 듣는 부엉이 소리가 무서웠다. 그러나 지금은 자다가도 창문을 빠끔 열어두어 숲에서 우는 부엉이 소리를 듣는다. 잠이 안 올 때나 생각이 자꾸 깊어질 때 그때 울어주는 부엉이소리는 반갑다. 눈 내리는 새벽 추위에 최씨 아저씨네 소가 움머, 움머, 목이 쉴 정도로 울 때도, 싸늘한 하늘에 달이 혼자 외로울 때도 부엉이는 동행하듯 그 산에서  춥고 긴 밤을 부엉부엉 울었다.

 

 

어느 날 봄이 왔다. 아니 4월이 왔다. 추위에 떨던 범우리산도 연두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참나무 속잎 피는 그 무렵의 산은 마치 먼 대양을 향해 출발하는 항해선 같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산은 풍선의 돛처럼 한껏 부푼다. 그 시절, 이쪽 세상에선 코로나19가 번지고 있었다. 어느 종교를 믿는 이들이 바이러스를 옮기는 주범이라며 손가락질을 하고, 그들을 향해 모진 말을 해가며 우리는 이성을 잃고 분노하고 있었다.

우리가 자제력을 잃어가며 어느 한쪽 방향을 향해 분노하고 있을 때에도 건너편 범우리산은 연둣빛에서 초록으로 넘어가는 그 일에 몰두했다. 피워 올린 속잎을 반짝반짝 닦고, 키를 한 뼘 키우고, 바람의 손을 잡으며 그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바람만인가. 나무들은 지난해 이 숲을 떠나간 새들이 돌아오기를 어미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무렵 텃밭에 나가 일하다 보면 꾀꼬리며 휘파람새, 봄을 여름 쪽으로 날라가는 뻐꾸기가 그 산을 찾아와 울었다. 그 때 우리 집 뜰안 우편통에도 곤줄박이 부부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여섯 마리 새끼를 쳤다.

뜰안 자두나무에 자두가 굵어갈 때 범우리산엔 어느덧 여름이 왔고, 능성이에 올라선 참나무들은 그 너머에서 불어오는 지루한 장맛비와 맞서 싸우느라 온몸을 흔들었다. 그때는 우리도 그랬다. 우리는 장마 중에도 헉헉거리며 마스크를 썼다. 마스크 없이 가까운 이웃을 만나러가다가도 그들의 눈빛이 무서워 집으로 되돌아와 마스크를 쓰고서야 만났다.

 

 

그때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고, 위로 받을 데 없던 우리는 이 말귀에 매달렸다. 그러나 우리는 이내 지쳤고 범우리산이 붉게 물들기 시작할 때에도 코로나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우리는 내일을 기약하지 못했다.

속절없이 비는 오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벌써 겨울 안에 들어섰다. 길 건너편 범우리산은 이미 한 해를 다 정리하고 그 예전의 모습으로 조용히 겨울 침묵 속에 들었다. 이쪽 세상의 한 해도 흘러 흘러 그 마지막 날에 와 있다.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로 두려움과 분노와 불안에 떨었다. 그 사이 우리는 '나와 타인'을 힘들게 발견했고, 분노의 감정을 거두고 '배려'라는 덕목을 받아들였다.

 

 

건너편 범우리산 하늘로 까치 두 마리가 바람을 타듯 난다. 올 한 해 저 산이 키워낸 까치들일지 모른다. 걸림 없이 자유롭게 나는 초연한 모습이 부럽다.

새해가 바로 턱앞에 와 있다. 새해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살아가는 범우리산의 그 너무도 일상적인 삶이 우리에게도 찾아왔으면 좋겠다.

 

<교차로신문> 2020년 12월 31일자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의 처지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0) 2021.01.02
새해 인사  (0) 2020.12.31
성탄 무렵에 받은 호박 선물  (0) 2020.12.20
창문에 뽁뽁이를 붙이며  (0) 2020.12.10
나는 삼식세끼  (0) 2020.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