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 뽁뽁이를 붙이며
권영상
날이 갈수록 기온이 떨어진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다락방에 올라가 지난봄에 떼어놓은 뽁뽁이를 찾아 내려왔다. 창문 여러 곳에 붙인 거니까 떼어낼 때 섞이지 않도록 ‘안방 창문’, ‘거실 창문 왼쪽’, ‘거실 창문 오른쪽’ 하는 식으로 쪽지를 써서 끼워 놓았다.
그걸 붙이는 일은 쉽고 간단하다. 유리문에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고 붙이면 끝이다. 맨 처음 재단할 때가 어렵지, 그 후 나는 몇 년 동안 제 짝을 찾아 붙이기만 했다. 다 붙인 뒤 거실바닥에 앉는다. 그거 붙였는데도 집안이 한결 아늑한 느낌이다.
고향에서도 초겨울쯤이면 창호문을 바른다. 마당이 좀 한가할 때를 골라 아버지는 방마다 창호문을 떼신다. 한 해 동안, 비를 가리고 햇볕을 받고 바람을 막아낸 창호문의 창호지는 계절의 얼룩이 배어 누르스름하다. 그런 얼룩진 문으로는 겨울을 날 수 없다. 햇빛 투과율이 턱없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낡은 문종이를 다 떼어내면 부러진 문살을 갈아 끼우거나 잇거나 하는 보수가 필요하다. 헐렁한 돌쩌귀는 갈고, 틀어져 이가 맞지 않는 문틀은 손을 봐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풀칠한 창호지를 아버지와 맞들어 붙인다. 창호지 붙이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미덕은 맞드는 일이다. 풀칠한 창호지는 금방 풀을 먹어 잘못 들어 올리면 집어든 귀퉁이가 찢어지거나 늘어나거나 일그러진다. 질긴 종이라면 잘못 붙여도 떼어내어 다시 붙이면 되지만 창호지는 그게 안 된다.
문 바르기가 끝나면 문을 마루에 비스듬히 걸쳐 놓아 볕에 말린다. 어느 정도 종이가 마르면 아버지는 물 한 모금을 입에 물고 창호문에 후욱 뿌린다. 문종이가 팽팽하게 펴지라고 하는 마지막 작업이다.
한나절 햇볕이면 창호문쯤은 고대 마른다.
손끝으로 마른 창호지를 톡 치면 탱, 하는 가을소리가 난다. 잘 말랐다는 뜻이다. 그러면 아버지는 방방이 문을 달고 벌여놓은 일을 설겆는다.
이제부터 어린 내가 할 일이 있다. 문 손잡이 근처에 멋을 내는 일이다. 안방 여닫이문엔 주로 은행잎이나 네잎 클로버를 대어 덧바르고, 사랑방 미닫이문엔 사시에 푸른 솔잎이나 측백나무 잎을 대어 덧발랐다. 때론 미농지를 반으로 접어 가위로 문양을 낸 뒤 덧바르기도 했다. 이 모두 시골 사람들이 내는 촌스러운 미적 감각이거나 멋이거나 풍취거나 그랬다. 그러나 거기엔 손잡이 부위가 찢어지는 걸 막으려는 의도도 깃들어 있었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냥 뽁뽁이만 붙여놓고 그 아늑함에 취해있을 일이 아니었다. 은행잎이라도 한 잎 구해 뽁뽁이 안에 붙이고 싶어 뜰로 나갔다. 흔한 게 은행잎이고, 튤립나무 잎이었는데 찾으려고 보니 없다. 집을 나서 괜히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근방을 한 바퀴 돌아 구해 온 것이 사철나무 동그란 잎과 푸른 댓잎이다.
붙여놓은 거실 유리문 뽁뽁이를 떼고 가운데 세로줄, 칸마다 사선으로 댓잎을 한 장씩 넣고 다시 붙인다. 멋지다. 댓잎의 운동감이 살아난다. 안방 창문엔 사철나무 잎을 칸마다 한 장씩 넣는다. 각진 창문에서 친환경적 느낌이 물씬 난다. 더욱 놀란 건 뜰 마당에 나가 창문을 바라볼 때다. 운치있고 멋스럽다.
올 겨울은 이들로 하여금 추워도 덜 춥고 힘들어도 덜 힘들겠다.
<교차로신문> 12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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