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처지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권영상
베란다 창가에 의자가 있다. 딸아이가 어느 가게에게 선물로 받았다는 헝겊으로 된 접이의자다. 처음에는 거실에서 이리저리 밀려다니다가 끝내는 베란다까지 나왔다. 방에서 한 데로 자리를 옮겼지만 의자는 의자의 구실을 잃지 않는 한 의자다.
코로나19 때문에 함부로 바깥나들이가 어려우면서부터 가끔 접이의자를 펴고 앉아 겨울 햇볕과 마주 한다. 요즘 집 바깥 것들 중에 자유로이 만날 수 있는 게 오염되지 않은 이 햇빛이다. 겨울이 되면서 아파트 앞동이 베란다로 들어오는 햇빛을 막는다. 그러나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 사이의 볕만은 알차게 든다.
베란다에 덴파레라는 양란 화분이 하나 있다. 지난 해 1월, 아내 생일이 다가올 즈음이다. 꽃가게에서 꽃 한 다발을 사려다 말고 차를 몰아 가까운 헌인릉 꽃 상가로 갔다. 몇 번 꽃구경을 갔던 경험이 있었다. 넓은 온실 속 꽃 화분들은 꽃가게 꽃들과 달리 생기 있고 건강해 보였다. 나는 거기서 노란 꽃이 몽울몽울 피는, 아내도 좋아할 양란 화분을 샀다.
두고두고 칭찬받았던 생일 선물 꽃이었다.
꽃은 우리 집에서 근 한 달을 탐스럽게 피었다. 늘 경험하는 일이지만 탐스러운 난꽃도 꽃 지고나면 시들고, 시들면 버릴 일만 남는다. 어차피 죽을 걸 하는 마음으로 난 화분을 비어있는 키 큰 화분 속에 밀어 넣고 가끔 생각나면 물을 주었다. 근데 어쩐 일인지 그는 그 속에서 여름을 나고 겨울에 들어서면서도 지치지 않고 자란다. 살뜰하게 보살피기는커녕 어쩌다 한 번씩 물을 주는 데도 부챗살처럼 펼쳐 올리는 난잎은 초록빛을 한껏 뿜어낸다. 이러다간 꽃이라도 보기좋게 피워 올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늘 봐도 초록잎이 멋있어!”
베란다 문을 열 때마다 꽃이 핀 부켄베리아보다 난화분에 눈이 먼저 간다.
2020년은 코로나가 우리를 지치게 했다. 나 혼자 겪는 고통이 아니니, 세상 모든 사람이 겪는 거니, 하며 견뎠지만 우리는 쉽게 꿈을 포기하거나 좌절하거나 그랬다. 그럴 때에도 용기를 준 건 초록의 천성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지키는 이 난 화분이었다. 이 난 화분도 제 몸보다 큰 컴컴한 화분 속에 들어가 있으니, 갇혀 사는 처지가 나와 다를 게 없다. 그런데도 그 불편한 처지를 딛고 마치 싱그러운 숲처럼 자라 오른다. 큰 화분 속에 빠져버린 자신의 처지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듯하다.
12시 무렵의 달콤한 겨울 햇살을 흠뻑 받는 이 난 화분을 보며 내 손에 들어온 2021년을 펼쳐 본다. 우리는 언제쯤 코로나 백신을 맞을 수 있을는지. 그걸 맞는다고 금방 예전처럼 자유로워지기라도 하는 건지. 또 다른 변종으로 어쩌면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더 오랜 날을 지난해처럼 살아야하는 건지 모든 게 불투명하다.
바라건대 지난해의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일들이 올해엔 전화위복의 실마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손님이 없어도 잘 참아내던 골목길 떡볶이 가게며 설렁탕 가게가 올해는 그 감내의 힘을 입어 좀 더 잘 됐으면 좋겠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새벽까지 게임에 빠져 지낸다는 친구의 나이든 아들도 올해엔 햇빛 아래에서 일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지난해 말, 3년 동안 중등학교 체육교사 임용고시를 보고 있다는 제자는 합격되면 기쁜 소식을 선생님께 꼭 전하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옛 제자의 기쁜 소식을 듣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 올해는 우리 사는 나라가 좀 조용했으면 좋겠다. 갇혀 산다 해도 우리 모두 난 화분의 난처럼 자신의 처지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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