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를 기다리며
권영상
그간 장마가 길었다. 폭염도 심했다.
그런 탓일까. 나비가 통 보이지 않는다. 한번 비 왔다 하면 그냥 비가 아니라 폭우가 쏟아졌고, 한번 더웠다 하면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올여름은 유난했다. 그러니 나비 같이 약한 생명들이 견뎌내기 힘들었을지 모른다.올여름이 얼마나 유난했냐 하면 그 독하던 미국선녀벌레가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어느 때에 문득 사라졌다.
미국선녀벌레란 2009년에 우리나라에 유입 된 해충으로 나무들 어린 가지에 하얗게 내린 눈처럼 달라붙어 즙을 빠는 벌레다. 알에서 깨어나 조금 자라면 선녀같이 하얀 날개로 톡톡 날아다니고, 이게 성충이 되면 탈피하여 작은 매미처럼 온갖 나무에 촘촘히 달라붙어 수액을 빤다.
이들 때문에 농촌이 너남없이 몸살을 앓는 형편이다. 농약으로도 방제가 어려운, 골치 아픈 존재가 그들이다. 근데 그들이 손 한 번 안 썼는데 폭염에 싹 사라졌다. 아니, 세상에! 반가우면서도 한편 섬뜩했다. 이건 해충 박멸의 문제가 아니라 생태계 문제이기 때문이다.
해충이 이러니 나비인들 타격을 안 입었을까.
나는 돌아오지 않는 나비들을 뜰 마당으로 불러들이기로 했다.
내년에 심으려고 모아둔 해바라기와 백일홍 씨앗을 찾아냈다.
백일홍은 한번 피면 꽃잎이 오므라들지 않아 나비들이 쉬지 않고 드나든다. 백일홍이 피면 집을 비워두어도 좋다. 나비들이 뻔질나게 뜰 마당을 드나들기 때문이다. 해질 무렵엔 어떻게 연락이 갔는지 박각시까지 백일홍에 날아와 정지 비행의 묘기를 보여주고 간다.
비가 잠시 그치는 사이, 밭 귀퉁이에 꽃씨 묻을 자리를 만들고 백일홍과 해바라기 씨앗을 넣었다. 사나흘 뒤면 싹이 나올 테고, 그로부터 보름쯤이면 모종할 만큼 자랄 테다. 이들이 자라면 나비 찾아오기 좋은 곳에 모종을 하겠다. 개화가 조금 늦어질지는 몰라도 10월 11월 중순까지는 충분히 꽃을 보겠다.
꽃 피면 나비들이 날아오겠다. 아무리 단순하게 살고 싶다 해도 나비가 들어오지 않는 뜰 당이라면 너무 쓸쓸하다. 장맛비에 자란 달개비가 바위틈 사이로 파란 꽃을 피운다. 그 꽃에 나비 한 마리쯤 날아와 앉아주지 않는다면 달개비는 또 얼마나 사는 맛이 안 날까.
해바라기는 여름장마에 피는 모습도 좋지만 노란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고추밭 가에 나와 가을 땡볕에 피는 모습도 참 좋다.
백일홍이 머리에 예쁜 나비 머리핀을 하고 나를 슬쩍 속일 때가 좋다. 백일홍에겐 사람을 피식 웃게 하는 익살스러움이 있다. 꽃이 피면 콩잎에 알을 낳으러 지나가는 작은부전나비 요놈을 보겠다. 배춧잎을 갉아먹고 먼 들판으로 가는 배추흰나비를 보겠다. 효소를 얻으려고 담근 보리수열매를 텃밭에 버리면 수많은 나비들이 날아와 단물을 빨던 기억이 떠오른다.
무엇보다도 나비는 자유롭다.
소나기가 그친 웅덩이에 빗물이 고이면 목을 축이러 나비들이 모여든다. 나비 날아간 뒤에 가 보면 물웅덩이에 파란 하늘이 있다. 나비들이 물을 마시러 모여든 게 아니었다. 그곳이 저쪽 세상으로 가는 통로인 줄 알고 모여든 것이다.
나비의 세계관은 이처럼 자유롭다. 이쪽과 저쪽이라는 세계가 따로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기에 공간 이동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 육지가 끝나면 두려워하지 않고 바로 바다로 덤벼든다. 나비는 그 나약해 보이는 몸으로 자유롭게 대양을 건넌다.
교차로신문 2023년 9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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