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지구와 지구인의 엇박자

권영상 2023. 8. 11. 10:52

 

지구와 지구인의 엇박자

권영상

 

 

“저기 저 나무들 좀 봐. 이상해.”

옆자리에 앉은 아내가 고속도로 변에 줄지어 서 있는 메타세콰이어를 가리킨다.

날씨가 너무 더위 말라죽는 게 아닐까, 아내가 재차 걱정이다.

얼핏 보기에도 나무 빛깔이 단풍이 든 것처럼 붉다. 아니 붉으데데하다. 길을 따라가며 서 있는 수십 그루의 메타세콰이어들이 지금 한창이어야할 초록색을 잃어가고 있다.

 

 

양지 인터체인지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안성 시골집으로 가는 국도에 들어섰다.

서울을 벗어났다고 특별히 시원하지 않다. 차창을 열 때마다 훅, 몰려들어오는 폭염에 놀라 얼른 창을 올린다. 지구 온난화 시대를 지나 지금은 ‘지구가 끓는 시대’라던 유엔기구 수장의 말이 실감날 정도다.

안성집에 들어서자마자 내 눈에 불쑥 띄는 게 있었다.

 

 

울타리 모퉁이에 서 있는 단풍나무다. 놀랍게도 단풍나무가 말라 죽어 있었다. 일주일 전에 왔을 때 그때 단풍나무는 멀쩡했다. 아니 괴로운 신호를 보내는 걸 우리가 감지하지 못 했을지 모른다. 20년생은 충분히 넘는 여태 잘 크던 나무다. 말라죽은 단풍나무 잎 빛깔에서 고속도로 변에서 보던 메타세콰이어의 빛깔이 교차되었다.

지난 한 달간 폭우 수준의 비가 자주 내렸으니 가뭄이 들어 죽은 건 아닌 듯 하다. 그렇다면?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폭염과 고온이 주범으로 떠올랐다. 선선한 산지에 사는 단풍나무가 고온에 제대로 적응을 못한 게 분명하다.

 

 

폭염과 고온이 덮친 건 단풍나무만이 아니다.

뜰앞에 선 모과나무도 고온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하다. 모과잎 일부가 가을도 아닌데 샛노랗다. 또 일부는 말라서 그야말로 붉으데데하다. 이미 뜰마당에 떨어진 잎들은 어떤가. 바싹 마른 나무껍질처럼 비틀려 있다. 계절상으로 보아 지금은 모과잎이 짙은 초록빛을 띠어야할 때다.

그러고 보니 엊그제 우면산 산자락 나무 농원에서 본 모과나무들도 그랬다. 잎을 다 떨구었거나 매달려 있는 잎들 역시 간신히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한두 그루가 아니라 여기저기서 자라는 10여 그루가 모두 헐벗은 채 서 있었다.

 

 

나는 서둘러 물 호스를 꺼내어 급한 대로 나무들마다 물을 줬다.

물을 주면서 보니 길옆  할머니집 주목도 검게 말라 죽어 있다. 이 주목이 크면 바둑 좋아하는 아들에게 바둑판 만들어주겠다며 우스개 말씀을 하시던 그 나무다.

우리가 몰라 그렇지 폭염과 고온에 신음하는 나무가 이들 뿐일까.

나무들이 힘들어 하는 건 여름만이 아니다. 겨울도 마찬가지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냉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뜰안의 배롱나무는 해마다 예쁜 꽃을 피웠고, 감나무도 대여섯 개씩 감을 열었다. 그러던 것이 정확히 3년 전부터다. 감나무와 배롱나무 포도나무가 해마다 냉해에 시달린다. 그건 이웃들도 마찬가지다.

눈과 얼음이 녹아 불어난 물에 휩쓸려 가던 극지방의 집들을 뉴스로 본 적이 있다. 지구 기온이 피부로 느껴질 만큼 심상찮다. 그런데도 세계는 끝까지, 가볼 데까지 가보자는 식이다. 나라마다 성장! 성장! 을 외치고, 나라마다 고비용의 출산 장려 대책을 내놓는다. 지구와 지구인의 엇박자가 세상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

 

교차로신문 2023년 8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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