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이비인후과가 있는 빌딩에서

권영상 2023. 8. 4. 12:15

 

이비인후과가 있는 빌딩에서

권영상

 

 

날이 조금 누그러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덥다.

창문을 열어놓고 잠을 자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붓는다. 활동을 하면 괜찮아지지만 아침마다 반복되는 게 불편하다. 아내가 이비인후과에 한 번 가 보라고 등을 떠민다. 

마침 이런 저런 볼일도 있고 해 겸사겸사 집을 나섰다.

아파트 후문으로 향하는 관리소 뒷길에 들어설 때다.  단풍나무 그늘 등의자에 노부부가 앉아 있다. 그분들을 방해할까봐 조용히 지나쳤다.

 

 

병원을 향해 걸어가며 나는 들고 온 이런 저런 볼일들을 봤다.

모임에 낼 연회비를 빠뜨린 것이 있어 농협에 들렀다. 그쪽에 간 김에 고장난 샤워기를 철물가게에서 사고, 돌아오는 길에 이비인후과 병원이 있는 빌딩 안으로 들어섰다.

병원은 6층이었다. 나는 위층에 올라가 있는 엘리베이터가 내려올 때를 기다리느라 엘리베이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때였다. 내 앞으로 노부부가 걸어와 멈추어 섰다. 아까 아파트 후문 단풍나무 그늘에서 본 그 부부다.

 

 

하얀 양복을 입은 남자분이 작은 꽃무늬가 있는 청회색 셔츠의 할머니 손을 잡고 있었다. 할머니는 혼자 서 있기 힘들 만큼 몸이 아픈지, 아니면 할아버지에게 손이 잡힌 게 부끄러워 그러시는지 빌딩 관리인 책상 쪽으로 몸을 숙이고 있었다.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고 문이 열렸다.

그분들이 타시기를 기다렸다가 뒤따라 들어섰다. 같은 6층이었다. 나는 노부부 뒤편에 멀찍이 떨어져 섰다. 나를 의식하는지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잡힌 손을 슬그머니 빼셨다. 그러고는 엘리베이터 손잡이 띠를 잡고 아까처럼 고개를 숙이셨다.

 

 

비녀머리만 안 하셨지 고향의 어머니를 보는 듯 했다. 아버지와 출입이 있어 함께 나가실 때면 어머니는 아버지 두어 걸음 뒤를 따라 걸으셨다. 그렇게 가시다가도 동네 분들을 만나면 아버지는 괜스레 어머니 곁에 다가가셨고, 어머니는 또 뭐가 민망스러운지 아버지를 은근히 밀쳐내셨다.

내가 안성에 잠깐잠깐 내려가 사는 집 길 건너 대추나무 댁에도 노부부가 계셨다.

 

 

어머니가 그리워 계절이 바뀌면 가끔 음료와 케이크를 드리곤 했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대추를 따시면 대추를, 수세미가 익으면 수세미를 들고 우리 집을 찾아오셨다. 할머니 댁에서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가까운 길은 없다. 오시려면 층층이 쌓은 바위를 타고 오셔야 했다. 그때, 할머니를 맞으러 나가 얼른 손을 내밀면 할머니는 한사코 사양하셨다.

“부끄럽게 무신!”

할머니는 들고 오신 것을 내게 내밀고는 당신의 손으로 무릎을 짚으며 올라오셨다.

 

 

오셔서는 내가 내어드리는 커피를 한 잔, 꼭 하셨다.

의자에 단정히 앉아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다른 곳에 시선을 두시면서 반찬은 할 줄 아는지, 밥은 거르지 않는지 물어보셨다. 연세를 드셨어도 마을에 온 낯선 사람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 것은 진정한 여성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가 탄 엘리베이터가 마침내 6층에 서고 문이 열렸다.

나보다 앞서 내린 노부부는 병원 쪽이 아닌 다른 방향의 복도로 향하신다. 아까와는 달리 할아버지가 할머니 뒤에 서서 조심조심 따라 가신다.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듯 한참 바라보다가 이비인후과 병원의 문을 연다.

 

교차로신문 2023년 8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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