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에겐 껑충이 있다
권영상
점심을 먹고 일어설 때다.
거실에 난데없이 개구리 한 놈이 나타났다. 그는 보란 듯이 껑충 뛰어 접어놓은 매트 위에 올라앉았다. 그러더니 또 붕 날아 방바닥에 뛰어내렸다.
아니 웬 개구리래?
나도 아내도 깜짝 놀랐다. 물가에서 노는 개구리를 방안에서 만나다니! 날벌레 때문에 출입문에 방충망을 설치해 놓았는데 잠시 열린 사이로 들어온 모양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지만 방안에 뛰어든 개구리는 정말 처음이다. 토끼라면 혹 모를까.
왕방울 눈을 가진 풀빛 참개구리다. 덩치가 크고, 잘 생겼다. 징그럽거나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린 시절에 데리고 놀던 그 친숙감이 깨어났다.
고향집 앞으론 꽤 큰 물도랑이 흘렀는데 고마리 풀숲엔 개구리가 많았다. 장난기가 돌면 그 큰 개구리들을 손으로 잡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참개구리도 그때 적 그 개구리다. 힘깨나 쓸 놈 같이 탄탄해 보인다.
나는 두 발로 출입문 쪽으로 개구리를 몰았다. 더 이상 나와 대적할 필요를 못 느꼈는지 순순히 방향을 틀더니 껑충! 뛰어 문턱을 휙 넘어간다.
거기서부터는 나무 데크다.
고추며 호박오가리 우엉대 말리기 좋으라고 데크를 널찍하게 만들었다. 개구리는 그 데크를 껑충, 껑충, 뛰더니 이내 뜰마당으로 내려선다.
그제야 나는 돌아섰다.
상추밭 김을 매려고 무심히 호미를 들이밀면 껑충 뛰어오르는 게 있다. 큼직한 참개구리다. 이 느닷없는 개구리 점프에 에쿠나! 하고 놀라 나는 가끔 엉덩방아를 찧는다. 개구리는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만 뛴다. 한번 껑충 뛰어 밭을 나가면 거기 앉아 일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그곳이 저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밭 지킴이 노릇을 한다.
생강이며 강황밭에 호스로 물을 줄 때면 그 밭을 지키는 참개구리가 물 기운에 못 이겨 점프를 하며 슬쩍 자리를 피한다. 대개 밭에 사는 개구리는 연한 풀빛을 띠거나 흙빛이다. 이들도 밤이 되면 마을이 소란하도록 운다.
근데 놀라운 건 우리 집 주변에 올챙이가 살만한 물웅덩이가 없다는 거다. 밭들과 야산뿐이다. 논이나 물웅덩이가 있다면 여기서 500미터쯤 내려가야 있다.
거기서 온다면 개구리들은 먼 길을 오는 셈이다. 오려면 장애물도 많다. 자동차가 다니는 시멘트길이 가로놓여 있고, 마을 비닐하우스도 여러 채 있다. 지독하게 농약을 치는 800평 고추밭이 있다. 그들은 그 험난한 지역을 껑충! 껑충! 뛰어 여기까지 왔을 테다.
생존을 위한 머나먼 진출이다.
개구리 때문에 깜짝 놀랄 때도 있지만 포물선을 그리며 껑충! 뛰어가는 모습은 여간 멋스럽지 않다. 개구리에겐 다른 생물들과 달리 이 껑충이라는 멋진 기술이 있다. 그들은 물에서 뭍으로, 또는 뭍에서 물로 이동할 때도 ‘껑충’ 이라는 도약의 기술을 활용한다. 자신들 앞에 놓인 숱한 장애물 또한 이 껑충! 으로 뛰어넘는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생물들 중에 이런 멋진 기술로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생물은 없다. 시골에 터전을 두고 사는 이들 또한 힘겨운 일에 부딪힐 때면 알게 모르게 개구리로부터 배운 이 껑충! 을 발휘한다. 그 때문에 도시 사람들과 달리 농촌 분들은 결코 장애물 앞에서 좌절하지 않는다. 껑충! 거뜬히 뛰어넘는다.
교차로신문 2023년 9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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