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바라기>의 오래된 추억
권영상
멋진 결혼식과 그 짤막한 행복도 잠깐,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남편 안토니오는 전쟁터로 가버리고 남편의 소식을 기다리던 아내 지오반나는 뜻밖에도 남편의 전사통지서를 받는다. 남편의 죽음을 믿을 수 없던 지오반나는 남편의 소속부대를 찾아가고 거기서 남편에 대한 또 다른 소식을 듣는다. 누군지 알 수 없는 한 제대 군인이 눈 내리는 벌판 속으로 도망쳤다는. 어쩌면 그가 남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남편을 찾아 러시아로 간다. 모스크바에서 우크라이나로 가는 그 길고 고달픈 여정과 열차의 창밖으로 펼쳐지던 끝 모를 해바라기 들판.
절정으로 치닫는 이 해바라기 꽃들은 어쩌면 남편을 찾아가는 한 여인 앞에 숨겨진 비극의 암시일까. 지오반나는 이미 다른 여인과 살고 있는 남편 안토니오를 만난다.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는 남편을 더 어찌할 수 없는 지오반나는 남편을 그곳에 두고 홀로 밀라노로 가는 열차에 뛰어오른다. 그 때 참을 수 없이 오열하던 지오반나의 울음과 좌절과 그리고 흐느끼듯 울려나오던 헨리 만치니의 서정적이면서도 감미로운 주제음악......
이 이야기는 1970년에 개봉된 소피아 로렌 주연의, 전쟁이 빚어낸 비극적 사랑을 다룬 영화 <해바라기>다.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동안에도 그들의 슬프고 허망한 사랑에 가슴이 자꾸 먹먹해진다.
오래 전에 본 영화인데도 7월이 오면 다시 그 영화가 떠오른다. 그 까닭은 지울 수 없을 만큼 인상 깊게 남아 있는 해바라기 꽃들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들판 가득히 핀 해바라기와 고달픈 여정 끝에 만난 남편 안토니오가 이제는 다른 여자의 남자가 되어 있다는 비탄과 비애. 그리고 오래도록 가슴을 후비듯 흐느끼는 달콤하나 우울한 음악.
나도 울타리 둘레에 해바라기를 심었다. 지난 이른 봄, 텃밭에 꽃씨 모종판을 만들고 거기에 해바라기 씨앗을 넉넉히 심었었다. 그걸로 울타리를 빙 둘러가며 심고도 남아 공들여 잔디를 가꾸던 뜰을 뒤집어엎고 남은 해바라기를 모조리 심었다. 그게 키 한 길씩 자라 지금 노란 해바라기 꽃이 한창이다.
다른 꽃들도 그런가 모르겠다. 해바라기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꽃판이 크고 색깔이 노랗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꽃들보다 높은 자리에서 꽃을 피우기 때문일까? 가끔 일몰과 마주하는 해바라기를 오래도록 지켜본다. 거기엔 유달리 아쉬운 작별의 장면이 있다. 서로 마주 보며 영원히 함께 할 것 같던 해바라기와 태양도 일몰이 가까워오면 더 이상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는 채로 헤어진다. 사람의 사랑이 해바라기와 다를 게 없다. 어쩌면 서로 같은 꿈을 꾸는 다른 종족일지도 모르겠다.
몇 달이 흐른 뒤, 고향을 찾아온 안토니오는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지오반나가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걸 알고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열차에 오른다. 플랫폼에 나와 그를 보내는 지오반나와 차창 안에서 슬픈 눈으로 지오반나를 바라보는 안토니오. 태양의 어두운 그림자가 작별의 아픔처럼 안토니오의 얼굴을 덮어갈 때 또 다시 비탄의 음악이 흐른다. 세상에는 이런 사랑이 있다.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애달프면서도 너무나 서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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