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그는 1980년대부터 이미 행복하다

권영상 2014. 7. 15. 13:40

그는 1980년대부터 이미 행복하다

권영상

 

 

 

 

 

전철을 타러갈 때면 가끔 집 앞 골목길에서 만나는 분이 있다. 흰색 반팔 남방에 무릎이 툭 불거져 나온 7부 바지 차림의 그분. 일흔 중반.

내가 그분을 줄곧 만나던 때는 내 지난날의 아침 출근시간대였다. 학교 출근은 아침 8시였기에 한 시간 거리의 집에서는 대개 7시에 출발했다. 여름은 모르지만 겨울철의 7시는 컴컴하다.그런 컴컴한 골목길을 걸어 나가다 보면 어김없이 그분이 나타났다.

내가 가는 골목 맞은편에서 오는 그분은 전봇대에 붙은 광고지를 껌 떼는 칼로 떼며 왔다. 아니면 골목 담벼락에 붙은 세일 광고지를 떼거나, 길바닥에 뒹구는 휴지며 쓰레기를 두 손 가득 주워들고 왔다. 이 골목길이 한길과 만나는 곳에 슈퍼마켓과 꽃집과 안경점, 미장원 등이 들어있는 4층 빌딩이 있다. 그 빌딩 주인이다. 그 빌딩 청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다.

 

 

 

 

“출근하시는구만요.”

예의 그 무릎이 툭 불거져 나온 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그분이 나를 알아보곤 했다. 나도 깍듯이 인사를 드리며 컴컴한 새벽길을 걸었다. 빌딩 주인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는 소박한 분이다. 10여 년을 이 길을 지나다니며 저절로 알게 되었다. 한 눈에 보기에 시골 농사를 짓던 옛날의 아저씨 모습이다. 골목 청소는 구청에서 새벽마다 하는데도 여긴 내가 맡을 테니 걱정마시유, 그러며 대놓고 하는 것 같았다.

 

 

 

 

이 빌딩이 서 있는 이곳은 80년대의 이른바 강남 ‘호박밭’이다. 그러니까 이 빌딩 주인 되시는 분은 그 ‘호박밭’을 짓던, 어쩌면 글만 간신히 아는 농사꾼이었을 듯싶다. 나는 처음 그분을 보면서 ‘운 좋은 호박밭 주인’이라거나 ‘시절을 잘 만난 졸부’라는 식으로 경멸했다. 그러며 머슴에게 빌딩을 지어줘 봤자, 머슴노릇밖에 더 할까? 그렇게 빈정대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 그분과 잠깐 나눈 대화에서 나는 그게 운이 좋은 결과만이 아님을 알았다.

“여기서 나랑 농사짓던 땅 가진 사람들 땅값 오르자, 땅 팔고 집 팔아 다들 벼락부자 됐지만 지금은 다 거지 됐구만요.”

그게 무슨 말인지 나는 금방 알았다. 실제 우리 주변엔 그런 졸부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땅값 오르면 그 금싸라기 땅 팔아 제일 먼저 하는 게 있다. 남들처럼 하는 부자행세다. 대처에 나가 빌딩 사고, 고급승용차 몰고, 골프 치러 다니고, 여자 하나씩 꿰어 차고 해외여행 뻔질나게 다니고....... 그러다 다 말아먹는 졸부들을 나는 많이 봤다.

 

 

 

 

“나라고 왜 그런 유혹이 없었겠어요. 하지만 나는 그때 그 모든 게 내 분수를 넘는 일이라 여기고 더 다른 욕심 근처로 가지 않았지요. 내꺼는 이 호박밭까지고 넘치는 건 내께 아니라고 여겼죠.”

그분에겐 그런 게 있었다. ‘호박밭’ 주인 이상의 현명한 행복학이 있었던 거다. 호박밭 그 이상의 것은, 암만 돈이 모이고, 몇 배의 재물이 쌓인다 해도 그건 내 것이 아니라는.

그렇다면 그 ‘호박밭까지’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어쩌면 무릎이 툭 불거진 7부 바지에 가슴을 열어놓고 입는 남방셔츠, 그리고 운동화 차림, 그것이 분명했다. 그분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고 행복했기에 그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았던 거다. 그러니까 그 지점이 요즘 말로 하는 그분의 손익분기점인 셈이었다. 그 이상의 것은 내 것이 아니니 좀 손해를 본단들 괴롭지 않고, 좀 이익을 본단들 그것 때문에 좋을 일이 없다. 그분은 이미 오래전 1980년대부터 행복해 있었으니까.

 

 

 

 

남의 행복을 따라가며 흉내내던 수많은 졸부들은 다 망했다. 그래도 망하지 않고  지금껏 남아있는 졸부들이 있다. 그들은 지금도 배고프다. 고급승용차를 몰아도 시원찮고, 알라스카에 가 상어지느러미를 먹어도 시원찮다. 동네 술집이 아니라 호텔 바에서 술을 마셔도 그렇고, 판검사 사위를 들여도 사는 게 별로 행복하지 않다. 남의 행복을 흉내내다보니 만족을 모른다. 그들은 그렇게 많이 가지고도 손익분기점을 아직 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손익분기점은 어디쯤이었을까.

나는 미래가 아닌 지나온 과거에서 그 지점을 찾아본다. 나는 어쩌면 그 무렵부터 행복할 수 있었는데, 남들이 찾는 행복의 대열에 끼어다니느라 고단하기만 했다. 이름하여 기성품 행복. 우리에겐 그런 기성품 같이 미리 재단된 행복이라는 것이 있었다. 자녀를 유명대학에 입학시키는 일, 평수 넓은 아파트에 살고, 수십억의 금융자산과 한두 건의 부동산을 굴리고, 고급 승용차에 골프회원권, 박사학위.

우리는 우리 사회가 만든 이 모범답안 같은 획일적인 행복을 좇아 여기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점에선 우리가 졸부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 오히려 불행할 뿐이다. 집 앞 골목길 그 순박한 호박밭 주인을 빼고는.

 

 

 

 

오후에 일이 있어 골목을 걸어 나가다가 오늘도 그분을 만났다. 그분은 그분 특유의 무릎 불거진 바지를 입고, 목장갑에 쓰레기 한 줌을 쥔 채 휘적휘적 걸어왔다. 이 골목 중간에 있는 소박한 옛날식 빌라가 그분의 집이다. 저녁을 먹으러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일흔은 넘었을 몸인데 바람개비처럼 몸이 가볍다. 나는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말이 없을 때는 서로 그 정도가 인사다.

재물을 가질수록 사람이란 더 탐욕스러운 법인데 그분의 눈빛엔 오히려 순박함이 살아있다. 그것도 일종의 손익분기점을 넘긴 것에 대한 영향인가. 호박밭을 짓던 그때의 순결성에서 한 치도 더 물들지 않으려는 안간힘. 그분은 분명 졸부행세를 하는 호박밭 주인들과 다르다. 남의 정답을 쫓아 허겁지겁 살지 않는, 진정 자신만의 행복을 누릴 줄 아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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