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꽃씨 온상을 만들며

권영상 2022. 3. 16. 20:36

꽃씨 온상을 만들며

권영상

 

 

쯔박쯔박쯔박쯔박!

모과나무에 날아온 박새가 요란하게 운다. 목소리가 또렷하면서도 울음이 길다.

조금 전에 안성으로 내려왔다. 적막이 도는 시골 뜰안에 난데없이 박새 소리라니! 마치 어느 낯선 별에 도착한 듯 신비한 느낌이다. 보통 때는 쯔박쯔박, 두 박자씩 끊어 우는데 지금은 아니다. 연속적으로 운다. 울음소리에서 뭔가 막 다가오는 임박함과 다급함이 묻어난다. 가까이 밀려들어오는 봄 탓인 듯하다. 박새 마음이 바빠진 것 같다. 머지않아 짝을 만나고,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새끼 칠 일을 생각하는 모양이다.

 

 

바깥 기둥에 달아놓은 온도계를 본다. 영상 16도다.

박새를 따라 나도 괜히 마음이 바빠진다. 이맘쯤에 해야 할 일이 있다. 꽃씨 온상이다. 꽃씨 온상을 하는 김에 내처 그 한켠에 상추며 쑥갓 씨앗도 넣을 생각이다. 텃밭 농사를 하면서 배운 게 있다. 적기다. 씨앗을 넣는데도 적기가 있고, 웃거름을 넣거나 수확하는 일에도 적기가 있다. 파종도 작물마다 적기가 다 다르다. 적기를 놓치면 훗날 거두어들일 것이 없어진다. 인디언 속담에 봄날에는 이야기를 즐겨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야기에 정신을 팔다 보면 때를 놓치기 때문이다.

 

 

삽을 꺼내어 남녘 밭 따스한 자리에 신문지 석장 크기의 온상을 만든다.

대충 자리를 정리하고 삽을 든다. 삽날이 무른 땅속을 쑥쑥 파고든다. 흙덩이를 손으로 툭툭 부수고 판판하게 흙을 편다. 비 끝이라 흙냄새가 좋다.

손가락으로 꽃씨 뿌릴 골을 낸다. 오래 전부터 쭉 심어온 프렌치 메리골드 씨앗을 뿌린다. 해마다 집둘레에 빙 돌아가며 울타리처럼 심어왔다. 허브식물이라 향기가 좋고, 한번 꽃 피면 서리 내릴 때까지 핀다. 우리 집에 해바라기가 한창 폈을 때다. 뜰아래 길을 지나가던 여자 아이가 ‘저기 저 집 해바라기별 같애.’ 그랬다. 그 후, 나는 가급적이면 이 별에 해바라기 심는 걸 멈추지 않는다. 키가 크고, 꽃판이 둥근 해바라기에는 먼 이국의 냄새가 난다.

 

 

지난해엔 백일홍, 봉숭아, 접시꽃이며 채송화를 가득 심었다. 주로 이름 있는 꽃보다는 우리 정서에 맞는 소박한 꽃들이다. 남들과 이야기하기 좋은 꽃이다. 비피더스니 포인세티어니 카모밀레라는 이름의 꽃들은 남들과 아무리 그 꽃 이야기를 해도 낯선 꽃이라 소통이 안 된다. 프렌치 메리골드 역시 이름이 낯설어 대화나 문학 속에 끌어들이기가 크게 좋은 꽃이름이 아니다. 그러나 해바라기니 백일홍, 분꽃, 봉숭아, 접시꽃은 정서적 공감대를 갖고 있는 꽃이라 대화가 쉽고 얘기를 나눌수록 정다워진다.

 

 

이들 꽃씨를 다 넣고 상추와 쑥갓 씨앗도 넣었다. 이번엔 좀 대범하게 고추씨와 호박씨도 한 줄씩 넣었다. 이제 이들은 내달 하순이면 본밭에 낼 수 있다. 그때가 그들의 적기다. 온상에 비닐을 덮고 일어서자, 문득 떠오르는 나의 적기가 있다.

오래전 일이지만 내게 초등학교 생활은 늘 고되었다. 손위 누나가 졸업하기 전에 나를 데리고 다니라며 아버지는 내 나이 6살에 초등학교에 보내셨다. 당연히 나는 고단했다. 그런데 우연일까. 중학교를 마칠 무렵 어머니는 병환으로 장기 입원을 하셨고, 나는 진학을 중단한 채 3년을 허송세월했다. 그 뒤 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그때에야 나도 남들이 하는 학급 임원도 하고, 세상을 보는 여유로운 눈도 생기고, 마음도 담대해졌다.

 

 

어머니의 병환이 나의 적기를 바로잡아주신 셈이다. 남들보다 두어 살 어린 나이로 고단하게 학창시절을 마쳤다면 나의 오늘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고비고비 적기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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