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사람 구실을 하다
권영상
동네 산을 오를 때마다 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산 입구에서 100여 미터 걸어 오르는 도중에서 만나는 편백나무다. 사람으로서 차마 그 앞을 그냥 지나치기가 너무 죄스러웠다. 그 때마다 나는 속으로 미안하구나! 그 말을 했다. 나이는 잘 모르겠지만 한창 성장하는 편백나무다.
늠름한 그 나무에겐 생을 잃을지도 모를 아픈 상처가 있다. 다들 무심히 지나치고 만다면 아픔에 시달리다 종국에는 고사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만든 실수 때문이다.
언제 어떤 일로 누가 저 나무 허리에 저렇게도 팽팽하게 로프를 묶어 놓았는지 알 수 없다. 모르기는 해도 그 나무와 길 건너 이쪽 어느 나무에 현수막이 걸렸던 듯하다. ‘산불 조심’ 아니면 ‘숲을 지킵시다’, ‘산사랑 나무 사랑’ 따위가 아니었을까. 사용 시한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편백나무에 묶어놓은 로프는 그대로 둔 채 현수막만 떼어갔을 테다.
그 후,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러간 걸까.
편백나무를 묶은 탄탄한 나일론 로프는 서서히 나무 허리를 조이면서 편백의 목피를 깊숙이 파고 들었다. 나무를 조이는 로프의 아래 위 목피가 막힌 핏줄처럼 불끈 튀어나왔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저걸 어떻게 내 손으로 해주고 싶었지만 그곳은 비탈진 데다 내 손이 닿기에 턱없이 높았다. 무엇보다 사다리가 필요했다.
나는 이 산중에서 숲을 관리하는 이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 일이 어느 날 이루어졌다. 산을 돌보러 나온 사내 둘을 만났다. 그들은 손에 삽과 톱을 들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편백나무를 보여주며 어떻게 좀 해주기를 바랐다. 그들은 들고 있던 삽을 치켜들어 보이며 ‘안 닿네요.’ 하고는 돌아섰다. 그러고 가는 게 미안했던지 ‘다음에 해 볼게요!’ 하고는 가버렸다.
그 말만으로도 그들이 고마웠다. 그날부터 편백 곁을 지날 때면 조금만 참아보자! 그들이 올 때까지. 그러며 나무를 위로했다. 나무 보기가 훨씬 덜 미안했다. 이 산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도 이 편백을 보기 전의 나처럼 무심했고, 그때마다 편백나무는 외로웠을 테다.
그러고 한 주일이 지나고 다시 한 달이 지나도록 편백을 옭아맨 로프는 그대로였다. ‘다음에 해 볼게요’ 한 그들은 그만 이 일을 잊고 만 듯 했다.
나는 안성 시골집에 모처럼 사둔 사다리를 떠올렸다.
옭아맨 로프를 풀어줄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 내가 온 보람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한 순간 그런 엉뚱한 생각이 스쳤다. 주변 나무들은 모두 잘 크는데 어쩌다 편백만이 고통에 시달리다가 고사한다면 그건 너무 불공평할 것 같았다. 지금도 고통스럽겠지만 앞으로도 고통에 시달릴 편백나무의 불투명한 운명이 가여웠다.
무엇보다 그 아픔을 내가 참기 힘들었다.
나는 안성에 내려가 사다리를 싣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낑낑대며 사다리를 메고 가 드디어 편백나무 아래에 쿵, 내려놓았다. 걱정마라. 이제 살았다! 하며 나무를 쳐다봤다.
아뿔싸! 어제까지 묶여져 있던 로프가 사라졌다.
힘이 탁 풀렸다. 하지만 다시 힘이 솟았다. ‘다음에 해 볼게요’ 하던 이들에 대한 신뢰를 되찾았고, 누가 하든 편백나무가 살아났다는 안도감이 내 마음을 휩싸고 돌았다.
오랜만에 사람 구실을 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사다리를 메고 돌아섰다. 이 봄이면 이제 편백도 좋은 꿈을 꿀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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