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층에서 뛰는 아기
권영상
볼일을 보러 현관문을 나설 때다. 바깥문 손잡이에 하얀 비닐 백이 걸려있다. 해외에 나가있는 딸아이가 가끔 택배로 보내는 커피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다. 비닐 백을 받아든 아내가 그 안에서 노란 메모지 한 장을 집어 든다.
“아기가 뛰어서 죄송해요. 죄송한 마음을 약소한 선물로 대신합니다. 6층 맘.”
짧은 글을 읽고난 아내가 ‘아, 이런!’ 했고, 나도 그만 ‘아!’ 한숨을 내쉬었다. 비닐 백 속에서 만쥬가 나왔다. 나는 그쯤에서 집을 나왔다.
요 며칠 전이다. 아내와 함께 탄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6층집 식구를 만났다. 여기서 오래 살고 있지만 알고 지내는 분은 별로 없다. 그저 간단히 목례만 하고 지내는 분이 두엇, 우리 집 위층인 6층 가족을 아는 이는 아내다.
“여보, 이 아기가 뛰는 아기야! 예쁘지? 많이 컸네!”
아내가 나를 돌아다 봤다.
3살쯤 돼 보이는 아기가 제 엄마 치마를 잡고 우리를 쳐다본다. 눈빛이 초롱초롱하고 볼이 통통하다. 엄마가 안녕! 인사를 시킨다.
“그래. 다리에 힘 올리느라 그렇게 잘 뛰었구나!”
나는 총명해 보이는 아기와 눈을 맞추느라 미처 그들 부모와 인사를 주고받을 새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다 내려왔고 문이 열렸다. 우리는 6층집 식구들과, 아니 그 아기와 반갑게 작별인사를 했다.
근데 지금 하는 말이지만 사내아이라 그런지 뛰는 발소리가 유난했다. 주로 저녁 무렵이거나 밤 9시쯤. 우리가 식사를 할 때이거나 저녁 일에 전념할 때다. 거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콩콩콩 달려가는 발소리는 맑고 또렷하게 울렸다.
“아빠가 퇴근했을 테니 아빠랑 노는 모양이네.”
“아빠가 데구르르 굴린 공을 잡으러 달려가고 있을지 몰라.”
우리는 저마다 6층 집의 저녁 풍경을 눈에 그리듯이 말했다. 그러면서 발소리가 뚝 그치면 발소리 날 때를 기다리곤 했다. 콩콩콩 뛰는 소리가 크기는 하지만 그리 귀에 거슬리지는 않았다. 자주, 연속적으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콩콩콩 발소리가 나기 시작한 건 우리 집 베란다에 제라늄이 붉게 필 때쯤이다. 화분에 심어놓은 대파가 파랗게 클 때쯤이고, 십자매가 알을 낳아 품기 시작할 때쯤이다. 그 때부터 아기 뛰는 발소리가 콩콩콩 들렸다.
걸음을 배운 아기는 걸음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뜀박질을 배운다. 뜀박질을 다 배운 아기는 그게 또 성이 차지 않아 문을 열고 마당으로 달려나간다.
“여보, 요 며칠 사이 콩콩거리는 발소리가 아주 야물어졌어!”
아내는 위층 아기의 발소리에서 아기의 성장을 느끼고 있었다.
그날, 엘리베이터에서 우리를 만난 아기는 좀 당황했을 테다. 그리고 아기가 뛴다는 말에 아기 엄마는 문득 층간 소음을 떠올렸을 테고, 죄송함을 느꼈을지 모른다.
저녁에 집에 오니, 아내가 만쥬가 담겼던 비닐 백에 딸기와 작가들이 내게 보내온 그림책 두 권을 담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간다. 한참 만에 내려온 아내가 수다스러워졌다.
애기가 볼수록 미남형이라느니, 발소리 울릴까봐 거실에 길다란 매트 깔아놓은 걸 보았다느니, 아기엄마가 타 주는 커피가 너무 맛있었다느니…….
우리가 한 말 때문에 조심시키는지 뚝 끊긴 애기 발소리가 못내 기다려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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