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도- 하- 자, 군- 부- 독- 재!
-6.29 시민 항쟁
권영상
군- 부- 독- 재, 타- 도- 하- 자!
어깨를 겯고
대학생들이 구호를 외쳤다.
명동성당이 가까운 중앙극장 앞 큰 길
여름으로 들어서는 6월이었다.
학생들은 맨손이었다.
불의를 참지 못하여 불끈 말아 쥔 맨손.
그들이 나아가는 길을 막아 선 전투경찰은
방패와 곤봉을 틀어잡았고,
두꺼운 방어복과 헬멧으로 무장했다.
그들 뒤엔 제 5공화국 군부독재의 오만한 권력자처럼
검정 최루탄차가
버티고 있었다.
호- 헌- 철- 폐, 독- 재- 타- 도!
명동성당에서 나와
종로로! 종로로! 나아가려 해 보지만
어림없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결코 외롭지 않다.
그들 뒤엔 마음 깊이 응원하며 지켜주는 든든한 힘이 있다.
여차하면 함께 싸워줄 수 있는 시민들과
손수건을 든 여학생들과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막 달려온 아빠가 있다.
1987년 6월 10일 수요일.
분필을 놓고 뛰어온 아빠 손엔
땀에 물컹 젖은 대학생들 손에 쥐어줄 물병이 있었다.
그는 누구였을까.
제 5공화국은 물러나라! 라는 비명 같은 구호가
종달새소리처럼 소스라치듯 날아올랐다.
그건 앞으로 나아가라는 진군의 신호였다.
그러나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저쪽에서 퍽, 퍽, 퍽, 최루탄이 날았다.
시위대가 먼지처럼 흩어졌다.
매운 최루가스를 피해 골목으로, 골목으로
벌컥 열어주는 가게 문 안으로 뛰어들었고,
쓰레기통 그늘 뒤에
머리를 숨겼고,
전투경찰은 이들을 쫓으며 곤봉을 휘둘러댔다.
그러나 시민들은 눈에 불을 켰다.
눈물가스에 콜록이면서도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곤봉을 휘두르던 전경이 물러갔다.
최루가스에 눈물범벅이 된
대학생 시위대가 길 위로 길 위로 다시 모여들었다.
-힘내라!
-우리 아들들아!
-싸워라! 더 싸워라!
그와 동시에 이번에는 사방에서 경적이 울렸다.
아무리 배달이 급해도
길이 막혀 안달복달 속이 터져도 그냥 있을 수는 없다.
봉제공장 원단을 실은 오토바이가 이기라며 경적을 울렸다.
사무실로 들어가던 승용차가 힘내라며 경적을 울렸다.
청과를 실은 트럭이, 승객을 태운 시내버스가 경적을 울렸다.
중앙극장 앞길이, 아니 종로가, 을지로가, 남대문로가
광화문 앞길이 경적소리로
뿜뿜뿜 가득 차올랐다.
그때에 맞추어 이를 지켜주던 시민들이
대학생들의 손에 눈물을 훔칠 손수건을, 그들의 빈 손에 주먹밥을,
그들의 목마른 손에
아빠는 움켜쥐었던 물병을 건넸다.
그리고 소리쳤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아빠의 목 쇤 목소리를 따라 너도나도 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고
대학생들은 그 위험한 길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기 시작했다.
제 5공화국은
허리춤에 권총을 찬 채 민주주의를 빼앗았고
그들은 그들이 뽑아놓은 대의원 선거로,
이른바 간접 선거로
대통령이 되었고, 그 나쁜 헌법을 지켜
그들의 밀약대로 다음 대통령마저 뽑겠다는 욕심을 부렸다.
군부 독재 7년은 암흑이었다.
그 어느 날부터 교실 게시판에 ‘신고’ 라는 쪽지가
붙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수업 이외의 정치적인
발언을 할 경우 경찰서로 신고할 것!”
굵은 글씨 쪽지였다.
그러나 철없는 아이들이라고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를까.
“바른 말 할 수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반드시 되찾아 너희들에게 돌려줄 거다.”고 했지만
누구도 그 아빠를 신고하지 않았다.
6월 26일 그날은 토요일,
3 교시 수업을 부지런히 마치고
아빠는 명동성당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길거리엔 물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박종철 사진과
이한열 학생의 최루탄에 맞아 붕대를 감은 사진이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쓰러진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우자!
이를 바라보기만 하던 시민들은
군사 정권의 독재에 더는 참지 못했다.
옷 파는 아줌마가 문을 닫고 가게를 나섰다.
일을 접은 회사원들이 회사를 뛰쳐나왔다.
길모퉁이 신기료 아저씨가 구두를 잡던 손을 놓고 나섰다.
백화점 점원 누나들이
퇴계로를 걸어, 을지로를 걸어, 코스모스 백화점 앞을 걸어
명동 길을 걸어 명동성당으로.
그 너머 중앙극장 앞길로 맨 주먹으로 모여들었다.
아니 아니다. 광화문이 가까운 곳은 광화문으로,
부산은 부산대로로, 광주는 광주대로로, 부천은 부천대로로
제 5공화국과 싸우기 위해 모여들었다.
모두 100만 명.
이번엔 어른들이 학생들과 어깨를 겯고
구호를 외쳤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시위는 한낮이 모자라 어둡도록 이어졌고
거칠게 날아다니던 전투경찰의 최루탄도
제 5공화국이 휘둘러대던 곤봉의 위력도
서서히 기울어가는 저녁 해처럼,
날개가 꺾인 갈까마귀떼처럼 어둠 속으로 묻혀가고 있었다.
그날, 아빠는 숨어든 중앙극장 2층
좁고 컴컴한 계단에 쪼그려 앉아
최루가스에 얼룩진 매운 눈물을 흘리다가
늦은 밤, 거기에서 먼, 남한산성 근방의 집으로
돌아오느라 땀에 밴 옷을 입고
버스에 올랐어도 부끄럽지 않았다.
이슥한 밤에
마침내 아빠가 돌아왔다.
“아빠가 오지 않아 엄마가 울고 있잖아. 아빤 왜 맨날 늦게 오는 거야?”
4살인 내가 물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네가 크면 네게 말해주려고
날마다 늦게 오는 거란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도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을 이루어냈을 때의
상기된 아빠의 얼굴을
그때 보았다.
아빠는 분명 좋은 일을 하고
이 밤에 돌아왔다.
그 3일 뒤.
6월 29일, 밀릴 데까지 밀린
군부독재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언론 자유 보장을 국민에게 약속했다.
이듬해가 88 올림픽이었다.
<어린이와 문학> 2020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