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고춧대를 태우며 피어오르는 연기

권영상 2013. 10. 24. 13:47

고춧대를 태우며 피어오르는 연기

권영상

 

 

 

 

 

늦은 가을이라 밤이 춥다. 바깥의 가을밤도 춥지만 집안도 마찬가지다. 저녁을 먹고 방에 불을 튼다. 꼭 일 주일 만에 내려왔더니 비워둔 집이 싸늘하다. 방바닥도 차고 벽도 차다. 난방 기름을 넉넉히 넣어놓았지만 매양 불을 틀 수 없다. 20여분 만에 끄고 말았다.

대신 혼자 앉아 늦도록 책을 읽는다. 린다 에겐스의 <아미쉬>. 그들의 느리고도 단순한 삶이 정겹다. 어쩌면 예전 우리 아버지들의 소박한 삶의 형태를 닮았다. 조금 가지고도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들. 그걸 읽다가 힘들면 또 좀 쉬고, 쉬다가 책을 바꾸어 시를 읽는다. 시도 젊은 사람의 날카로운 시보다 인생을 좀 살아본 시인의 느긋한 시가 좋다. 천천히 읽고 읽은 시를 또 읽는다.

 

 

 

이따금 건너편 산에서 밤새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늦은 밤 간간히 들려오는 새 울음소리야말로 경건한 시다. 새가 의미로운 시 한 행을 들려주고는 쉰다. 그러다가 내가 그 의미를 이해할 때쯤이면 새는 또 한 행의 짤막한 싯구를 들려준다. 어쩌면 새는 오랫동안 저들의 세상에 전해 내려오는 서사시를 내게 들려주는지 모른다. 새도 한 행 한 행 시를 음미하느라 저렇게 천천히 들려주는 모양이다. 저도 모르게 시의 세계에 함뿍 빠져들었나 보다. 아무리 기다려도 더 이상의 울음소리가 없다. 다음 싯구를 기다리고 있는 내 마음을 밤새가 애태운다. 

 

 

 

밤이 깊어지는 시계소리에 그만 잠자리를 편다.

담요를 두 개 깔고, 그 위에 여름 이불 두 개를 폈다. 

안성 내려가 추위에 떨지 말고 자라며 아내가 전기요와 겨울 이불을 일찌감치 사다놓았다. 그러나 나는 내려올 때 일부러 가져오지 않았다. 추운 밤 이불속에서 좀 떨며 잠 들기를 바랐다. 그간 마음 써주는 아내 덕에 내가 너무 편하게 살았다. 매일 해주는 밥도 저절로 지어지는 줄 알았고, 여름되면 여름 이불을 누가 던져주는 줄 알았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더운 물도, 늘 깨끗해지는 방도 모두 아내의 손에서 나왔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내의 손에서 편하게 컸다.

“전기요는 무슨. 추우면 좀 추운 대로 견뎌볼 거야.”

아내가 전기요를 사가지고 왔을 때 나는 배 부른 소리를 했다.

그러고 내려왔으니 나는 이제 내 방식대로 견뎌봐야 한다.

추운 밤을 견디느라 나는 몇 번이나 깨어났고, 몇 번이나 추운 기운을 견디느라 몸을 뒤척였다. 이불을 뒤집어썼다가, 몸을 옹크렸다가, 모로 누웠다가, 어린 시절 한 이불 속에서 조카들과 함께 몸을 부대끼며 자던 그 겨울을 떠올리다가 눈을 떴다. 창문에 환한 아침 해가 와 있었다. 일어나니 몸이 무겁다.

 

 

 

 

아침밥을 지어 대충 먹고 났을 때다.

집 바깥에서 무언가 탁, 탁, 타는 소리가 난다. 창문을 여니 길 건너 고추밭에서 구름처럼 커다란 연기가 피어오른다. 마른 고춧대를 태우고 있다. 고춧대를 한 아름씩 안아다 불 위에 던질 때마다 희고 부드러운 연기가 뭉게뭉게 오른다.

그냥 바라볼 수만 없다. 하얀 연기가 나를 잡아끈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마당에 나섰다. 한여름 내내 고추밭에 나와 고추를 따시던 할아버지가 고추밭 이랑에 앉아 끝물고추를 따신다. 대충 그러고 나면 그분의 아드님이 낫을 들고 한 아름씩 고춧대를 잘라다 불더미에 던진다.

“이제 밭 정리를 하실 모양이지요?”

나는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며 고추밭에 들어섰다.

 

 

 

“또 내려오셨구만. 내가 저번에.”

허리를 구부려 끝물 고추를 따시던 할아버지께서 이내 나를 알아보신다.

“저번에 내가 고추 따고 있을 때 이사했다며 떡 돌리셨지? 그 떡 갚음을 하려고 갔었지. 우리 집에 땅콩을 했거든. 그 땅콩 좀 드리려고.”

“아, 그러셨어요? 일 주일간 집을 비웠습니다.”

“그러셨구만. 언제 한번 와요.”

할아버지가 허리를 펴시며 저기, 공회당 옆집! 하신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는 고춧대를 태우는 불 곁으로 다가갔다. 서리 내린 들판은 아직 싸늘한데 불 근처만은 다르다. 후끈후끈하다. 밤새 싸늘하게 식은 내 몸에 핏기가 도는 것 같다. 몸이 달아오른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며 허벅지가 뜨거워진다.

“벌써 불이 좋아지지요?”

고춧대를 거두어들이는 아드님이 한 아름 안고 온 고춧대를 불 위에 던진다. 나는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뭉게구름 같은 연기가 불 위에서 뭉깃뭉깃 서로 뒤엉켜 감돌더니 훌쩍 공중으로 치뻗쳐 오른다. 재티도 함께 회오리치듯 날아오른다. 나도 모르게 손을 내젓는다. 그 한 차례의 뭉게구름 연기가 풀썩 오르고 나면 연기는 이내 파랗게 변하고 알불만 불속에서 번쩍거린다.

 

 

 

“올해 고추 좀 하셨지요?”

나는 여름날 밭을 빨갛게 달구던 고추를 떠올렸다.

“이 칠백쉰 평에서 천오백 근했어요.”

불앞에 멈추어 불을 쬐며 서슴없이 대답한다.

“천오백 근이면 몇 킬로지요?”

내가 또 물었다.

“삼 킬로가 다섯 근이에요.”

알 것 같이 물어놓고 그게 몇 킬로그램인지 모르겠다.

“아, 많이 하셨군요.”

그러고는 불 앞에 이리저리 몸을 돌려가며 충분히 달구었다.

할아버지의 아드님은 자꾸 고춧대를 안고 와 불 위에 던진다.

나도 불콰해진 얼굴로 타다만 고춧대를 모아 불속에 던진다.

 

 

 

 

“할아버지! 약주 하실 줄 아세요?”

할아버지가 뭐 쪼꼼! 하신다.

나는 집에 돌아와 두부를 잘라 넣고 만든 곰국을 데웠다.

곰국 한 그릇, 소주 한 병, 술잔 하나, 곰국 떠 자실 숟가락 하나. 그걸 바구니에 담아가지고 고추밭으로 나갔다.

“할아버지, 제가 만든 새참 들어 보세요.”

나는 바구니를 할아버지 앞에 내려놓았다. 참 얼마 만에 겪어보는 경험인가.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도심에선 생각도 해 볼 수 없는 풍경을 내가 만들고 있다. 나는 그런 내게 놀란다.

건너편 산그늘이 떠나지 않고 고추밭 이랑에 머물러 있다. 할아버지는 그런 그늘 속 이랑에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 끝물 고추를 떼어내고 있었다. 고추밭엔 추운 밤기운이 아직도 남아있다.

 

 

 

“아니, 내가 그냥으로다 한 말인데…….”

할아버지가 술잔을 받으신다. 쪼꼼, 하신 대로 한잔을 더 못하신다. 그러고는 내가 데워 내간 따끈한 곰국을 후룩후룩 드신다. 나이 여든 다섯. 도심의 반들반들한 노인들과 달리 인간다운 따스한 데가 있다.

“내가 술값을 내지. 글을 좋아하신다니.”

할아버지가 입술을 훔치신다.

 

 

이승의 나그네야.

가져갈 수 없는 무거운 짐에

미련을 두지마라.

 

빈 몸으로 와

세상 구경 잘 했으면 그만이지

무슨 염치로

세상 것을 가져가려 하는고.

 

 

 

요 앞, 조비산 밑에 있는 절에서 배웠다며 내게 술을 권하신다. 나도 딱 한잔을 받아 마셨다. 그분의 아드님은 아예 술을 못하신다.

나는 새참 바구니를 거두어 들고 고추밭을 나섰다.

지난 밤, 밤새에게 다 듣지 못한 나머지 싯구를 오늘 아침 고추밭 할아버지에게서 마저 들었다. 세상 것에 미련을 두지 말라는. 나는 고추밭을 다 걸어나와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다 봤다.

할아버지는 아까 그 자리에서 여전히 끝물고추를 따시고, 그분의 아드님은 또 여전히 고춧대를 거두어들인다.

나는 내 방에 들어와 간밤에 읽던 시집을 펴고 앉아 다시 읽어본다. 고추밭에서 듣던 할아버지 목소리와 전혀 다른 기름기만 가득한 시들이다. 내 글도 이럴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