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란한 상상
권영상
앞산 숲위로 아침 해가 떠오른다.
창문을 연다. 싸아한 찬 기운이 들면서도 볕이 따스하다. 건너편 빈 밭이나 배추밭 배추 위로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서리가 내리느라 간밤이 추웠다. 집마당 잔디며 크로버 잎에 이슬이 반짝인다. 이슬이 굵다. 정말이지 보석 같은 이슬의 무게에 바랭이 풀대궁이 활처럼 구부러져 있다. 우리가 방안에서 한기를 느끼며 몸을 옹크리고 잘 때 바깥에선 풀들이 찬 이슬의 무게에 짓눌려 밤새도록 허리가 휜다.
맑은 날인데 데크에 물방울이 떨어져 튀어 오른다. 가만히 보니 그 위 난간에 내린 진한 서리가 녹아 흐르고 있다. 아침 해에 찬 서리가 녹는다. 녹은 서릿물이 낮은 데로 흘러 데크에 툭툭 떨어진다. 날마다 서리가 녹아 그렇게 떨어졌을 텐데 오늘 처음 본다. 내 눈이 무디다.
서릿물이 반짝반짝 튕겨져 오른다. 튕겨져선 반짝이며 부서지는 한 순간의 이슬방울 인생을 본다. 짧기는 하지만 순간은 다 아름답다. 순간이어서 더욱 아름답다. 순간에도 미학이 있고, 절정이 있고, 황홀함이 있다. 슬픈 순간이면 또 슬픈 순간대로 거기엔 슬픈 절정과 황홀감과 미학이 있다.
무료히 바닥에 떨어지는 이슬방울을 보고 있을 때다.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특급 사랑이야......”
그때 영화의 배경음악이 훅 바뀌듯 난데없이 트로트 음악이 날아온다.
나는 고개를 들어 소리나는 쪽을 본다. 파란 지붕 너머에서 커다란 농기계가 엔진 소리를 내며 이쪽으로 굴러온다. 노래는 그 농기계 속에서 쏟아져 나온다. 농기계가 집 앞 갈아엎은 고추밭으로 들어선다. 김형이다.
김형이 고추밭 안에다 기계를 세우고 내려온다. 그러더니 그의 아들임즉한 대여섯 살 아들 겨드랑이를 껴들어 밭에다 내려세운다. 김형이 기계에 싣고온 아구리가 큼직한 종다리끼를 꺼내어 끈을 목덜미에 걸어 옆구리에 껴안는다. 밭에다 뭘 뿌리려는 모양이다. 종다리끼에서 뭔가 한 주먹씩 씨앗을 불끈 움켜내어 휙휙 밭에다 뿌리며 나간다.
어제 늦은 저녁 무렵에 갈아엎은 밭이니 걸음을 내딛기에 밭이 부드럽고 풋풋할 것이다. 그쪽은 아직 앞산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씨를 뿌리는 모습이 마치 그림자에 휩싸인 밭의 어둠을 몰아내는 형국이다. 씨앗들은 김형의 손아귀에서 사정없이 대지를 향해 휙휙 날아간다. 그러는 김형의 뒤로 그의 어린 아들이 아버지 흉내를 내며 쫓아간다.
나는 이쪽 창가에 서서 그 씨 뿌리는 모습을 내다본다. 한 주먹씩 붉은 씨앗을 움켜쥐고 땅을 제압하듯 뿌려대는 김형의 모습이 꼭 어디선 본 듯하다. 농민의 슬픈 운명을 그려낸 바르비종 태생의 장 프랑수아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이다.
씨앗을 뿌리러 밭에 들어선 사람에겐 혁명적 의지가 생기나 보다. 씨앗을 움켜쥐는 김형의 손이 위압적이다.
750평에서 고추 1500근을 했다는 밭을 설겆은지 하루도 안 됐다. 그런 밭에 김형은 제 아들을 데리고 나와 다시 농사일을 시작한다. 농사꾼이 다 그렇듯 그도 사뭇 부지런하다.
“김형! 지금 뭘 뿌리는 거요?”
나는 결국 마당으로 나갔다.
“호밀요. 호밀씨.”
김형이 뜻밖에도 호밀씨라 한다.
호밀이라는 말에 마음이 일렁인다.
“이 밭이 산그늘 드는 찬 땅이라 이게 적격이지요.”
김형이 호밀씨를 뿌리며 휘적휘적 밭을 크게 돈다.
그래 맞다. 폴란드 영화에서 본, 풍랑처럼 굽이치던 그 호밀이다. 호밀이란 통칭 오랑캐들이 사는 흉노의 땅에서 온 밀을 말한다. 그러니 춥고 척박한 땅에서 자라던 게 호밀이다. 김형이 그 밭에 맞게 호밀을 심는다.
예전 고향 강릉에도 호밀밭이 있었다. 어른 키보다 크고 빛깔도 초록이기 보다는 회색에 가까운 갈대처럼 가는 몸을 가졌다. 그런 탓에 바람이라도 설핏 불면 호밀대는 날아오를 듯 흔들렸다.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문을 열듯 은밀히, 일렁이는 호밀밭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음란한 생각이 일었다. 처음 키스를 한 여자가 떠오르고, 아직 잘 알지 못하던 여자의 발달한 몸이 떠오르고, 그녀랑 좀 더 깊은 관계를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일었다. 호밀은 금방 쓰러질듯 가볍게 흔들리지만 그 내부엔 사람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요부 같은 힘이 있었다. 호밀밭은 보리밭보다 달밤보다 더 에로틱하다. 누군가 들판에 은밀히 지어놓은 야한 집을 닮았다. 그래서 호밀밭에 들어서면 호밀이 자꾸 정사의 절정을 유혹했다.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남자 가수의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아직 잠에서 덜 깬 내 혼미한 정신을 흔든다.
다시 데크에 올라선다.
아까까지 툭툭 떨어지던 서리 녹은 물도 다 그쳤다. 난간 위에 흐르던 물기도 벌써 다 말랐다. 우리가 길게 느끼는 시간도 이런 순간순간을 배열해 놓은 것들이다.
김형이 그 너른 밭에 호밀씨를 뿌리고, 기계로 덮고 간 사이 다시 마을이 고요해진다. 고요하다는 건 정지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순간에도 호밀씨를 뿌린 밭의 산 그림자가 사라지고 햇빛이 함뿍 들어와 섰다.
이제 나는 기다릴 것이 생겨 좋아졌다.
좀만 있으면 앞밭에서 파랗게 돋아나는 호밀을 볼 것이다. 그리고 내년, 봄이 오면 내 방에 앉아서도 일렁일렁 일렁대는 호밀밭을 바라볼 수 있다. 바람이 불면 그때도 일렁대는 호밀을 바라보며 나는 가끔 음란한 생각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이슬 한 방울 속에 황홀한 미학이 있듯 음란한 상상 속에도 빛나는 절정이 있다.
내년 5월이 기다려진다.
아무래도 그때가 너무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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