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가을 풍경 속에서 만난 사나이

권영상 2013. 9. 26. 11:56

가을 풍경 속에서 만난 사나이

권영상

 

 

 

 

 

가을볕이 참 아깝다.

나 모르게 들판으로 쏟아지는 가을볕이 꼭 내 것 같아 그냥 있지 못하겠다. 하던 손을 놓고 신발을 곧추 신었다. 그리고는 마실 너머 고래골로 향했다. 여섯 집이 모여 있는 마실 고샅을 지나다가 담장이 온통 수세미 꽃인 집을 만난다. 수세미 초록 순이 그 집 담장뿐 아니라 대문밖에 있는 빈 개집까지 올라가 덩그렇게 샛노란 꽃을 피운다. 맞은편 집 마당엔 대추나무 대추가 굵다. 꼭 쇠불알만큼씩 크고 붉다. 그 옆 몇 살 안 먹는 밤나무에도 밤송이 대여섯이 달렸는데 낫살에 비해 밤송이가 크다. 그 밑을 지나다가는 붉은 밤아람에 맞아 머리가 터질 지도 모르겠다.

 

 

폐가를 개량하고 있는 파란 지붕 집은 내가 서울에 다녀온 며칠 뒤 많이 변했다. 벽돌로 빈 벽을 다 쌓았다. 그 집 마당에 앉아 천장을 쳐다보니 이미 합판까지 다 붙여놓았다. 날이 추워지기 전에 사람이 들어와 살 모양이다. 못을 대고 망치질 하는 목수들의 손길이 재다. 아직 주인이 들어와 살 날은 멀었지만 그 집 울타리엔 돼지감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이쪽 하늘의 가을해보다 밝기로 말한다면 더 밝다. 눈부시다.

 

 

 

그 집 변소를 끼고 오르면 언덕이 나온다.

거기가 벽장골이다. 뭔가 꽉 막힌 골짝이란 뜻 같다. 맞은편에 산이 길게 누워있고, 그 아래는 모두 고구마 밭이다. 고구마 밭을 지나면 산언덕 아래로 넓게 펼쳐진 논벌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기가 고래골이다. 추석 전에 왔을 때 나는 이 누렇게 벼가 익는 들판이 내 고향 하평 들판 같아 논벌에 서 있는 전신주를 보고도 반가워 꾸벅 인사를 할 뻔했다. 벼이삭은 익을 대로 잘 익었고, 어디 병든데 하나 없이 쪽 고르다. 들판이 내 손에 밥숟가락을 들려주지 않는데도 내 배가 자연히 불러오는 느낌이다.

그런데 지난 비바람에 쓰러졌던 올벼 논은 벼를 다 거두어 들였다. 벼 베고 난 벼그루터기마다 파란 벼 순이 돋아난다. 그래, 어렸을 적 서리 내린 논에 돋던 그 파란 순이다. 그걸 보려니 가슴이 뛴다. 그 별것 아닌 풍경에 왜 가슴이 뛸까. 그 파란 벼순에도 고향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만 그럴 뿐이지 실은 고래골 논벌엔 아직도 한창 벼가 익고 있는 중이다. 논둑에 내려서서 벼포기를 꽉 움켜쥐어 본다. 내 손아귀에 꽉 찬다. 내 마음이 뿌듯하다. 

어디에서 또랑또랑또랑 물 빠지는 소리가 난다. 논둑에 쭉 심어놓은, 잘 어우러진 섬콩포기 아래에서 난다. 섬콩을 헤치고 가 보니 거기 물꼬가 있다. 통째 다 열려있다. 유난히 맑은 논물이 반짝거리며 기어나와 봇도랑으로 굴러 떨어진다.

“또랑또랑또랑…….”

물소리가 말갛게 익었다.

손을 대어본다. 햇볕에 익어 따스하다.

 

 

 

 

도랑물을 내려다본다. 거기 오래 전에 도회에서 보던 사나이가 문득 와 있다. 직장에 지치고, 사는 일에 지치고, 일에 시달리느라 얼굴이 까칠해진 사나이다. 그가 도회에서 멀리 떨어진 이 시골까지 왔다. 봇도랑 물에 어룽거리는 그 사나이가 나를 빤히 올려다본다.

“여긴 왜 왔느냐?”

그 사나이에게 물었다.

“여긴 왜 왔느냐?”

그 사나이가 나와 똑 같은 어투로 내게 묻는다.

그의 물음에 나는 멈칫한다.

 

 

내가 여기 왜 왔을까.

도회에 아내를 두고, 자식을 두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내가 편한 곳을 두고 여기 왜 와 있을까. 나는 대답이라도 찾아낼 듯 물속을 자꾸 들여다본다. 혹 예전의 나를 찾으러 온 건 아닐까.

40대, 그때 나는 ‘시골 내려가 농사나 지으며 살고 싶다’ 그 노래를 입에 달고 살았다. 아내에게 숱한 지청구를 들으면서도 내 정신은 고향 같은 시골에 가 있었다. 왜 그랬을까. 어찌 보면 그때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을 것 같다. 무엇 하나 나를 위한 삶이 없었다. 은행돈을 빌려 집을 사고, 딸아이의 무거운 학비를 대고, 주말이면 결혼예식장이다 뭐다 신발이 닳도록 돌아다니고, 고향 집안의 대소사는 왜 그렇게 많고, 명절은 왜 그렇게 빨리 닥쳐오던지. 그래서 힘들어 술을 먹고, 술 먹어서 며칠씩이나 배를 움켜쥐고 출퇴근을 했다.

“시골 내려가 농사나 지으며 살고 싶다.”

그 40대엔 입만 열면 시골 타령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여기 와 있는 건 그때 그 힘들고 고단했던 사나이가 아직도 내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인듯 하다. 그래서 내가 그 사나이 손에 이끌려 도회로부터 먼 여기 이 농가 근처에 왔다. 와서 물꼬에서 흘러나온 물속의 사나이를 보고 있다.

사나이의 지친 얼굴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차츰차츰 펴진다. 볼수록 정이 든다. 험난한 대양에 나갔다가 지친 모습으로 돌아온 항해사를 닮았다. 광풍이 이는 전쟁터에서 아무 것도 없은 것 없이 돌아온 늙은 병사의 얼굴을 닮았다. 나는 그런, 바람 많고 비 무성하게 내리는 인생이라는 먼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다. 봇도랑 물속의 사나이가 나라서 그렇겠다. 까칠하긴 해도 볼수록 정이 든다. 우리는 험난한 인생살이를 함께 했다.

사나이의 얼굴이 때 묻지 않은 소년의 얼굴로 바뀐다. 아니 사나이의 소년 적 모습이 얼핏얼핏 보인다. 꿈이 많았던 소년.

 

 

 

 

나는 물꼬 앞에서 일어섰다.

들깨가 고소하게 익는 논둑길을 따라간다. 가을볕이 들깨 숲을 넘나든다. 그 바람에 코안이 고소하다.

들깨길 끝에 노랗게 핀 꽃무덕이 있다. 가까이 가까이 가 본다. 방가지똥 꽃이다. 국화과. 크기도 잘 컸거니와 꽃도 크고 좋다. 나는 깊이 허리를 숙여 코를 댄다. 나보다 먼저 꽃에 앉았던 벌이 슬쩍 자리를 비켜준다. 꽃빛이 내 코를 쏜다. 상큼하다. 한 송이 꺾고 싶다. 그런 욕심이 난다. 괜히 꺾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나는 내 양심 때문에 한참을 망설이다 다시 걷는다. 내 안에 욕심 없는 소년이 있다. 그리고 내 안에 욕심 많은 한 사나이가 있다. 둘은 가끔 싸운다.

 

 

 

논벌을 벗어날 즈음, 누군가 뒤에서 내 걸음을 붙든다. 뒤돌아선다.

가을볕이 소낙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누런 논벌 저쪽으로 내 눈이 간다. 섬콩이 익고 있는 물꼬 쪽이다. 물꼬에서 흘러내린 봇도랑 물속에 까칠해진 사나이를 두고 여기까지 왔다. 내 눈이 자꾸 그쪽으로 쏠린다. 그에 대한 말 못할 연민이 있다. 나는 내일 또 이 길을 와야겠다. 나와 함께 오랫동안 살아온 그를 만나러.

 

 

산모롱이를 빙 돌아간다.

먼 북쪽 하늘 밑에 불끈 솟아오른 조비산이 유혹하듯 서 있다. 유혹하는 것은 조비산만이 아니다. 농가의 담장 밑에 핀 빨간 백일홍 꽃빛이 내 눈을 잡아끈다. 길섶의 빨간 여뀌풀꽃이며, 웅숭깊은 데서 피는 고만두 풀꽃, 고들빼기 노란 꽃, 호박꽃 숲에서 피는 보랏빛 쑥부쟁이, 억새 하얀 꽃.

고추밭 너머 지붕이 낮은 허름한 민가들, 민가 사이에 버려진 고즈넉한 교회당, 그리고 새로 지은 전원주택, 비닐하우스 앞에 서 있는 빛바랜 호두나무숲……. 모두들 가을볕 앞에서 그에 합당한 제 존재의 무게를 누린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오래된 명화 속 고졸미가 이렇다.

 

 

집에 들어와 라디오를 켠다.

거쉬인의 ‘랩소디 인 블루’의 웅장하고 감미로운 피아노가 흘러나온다. 이 흙냄새 나는 시골에 와 가장 현대적인 그의 감각을 만난다.

가을볕을 바라보며 거쉬인이 끝날 때까지 지긋이 이 자리에 앉아본다. 내 안에 살고 있는 사나이와 소년이 피아노와 금속성 악기에 귀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