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이 자리를 떠나면 나의 얼굴이 보인다

권영상 2013. 9. 17. 17:14

 

이 자리를 떠나면 나의 얼굴이 보인다

권영상

 

 

 

 

 

서울에 집을 두고 안성에 혼자 내려가 산 지 꼭 한 달 됐다. 안성 어느 산골짜기에 조그마한 집 하나를 얻어 삼복더위에 이사를 했다. 집 앞에는 농사를 짓는 농가 다섯 집이 있고, 집 뒤에는 외지에서 들어와 사는 전원주택들이 있다. 전원주택에 들어와 사는 이들 중엔 주말에 와 머물다 가는 이들도 있고, 퇴직하여 상주하는 이들도 있다.

 

 

 

 

오늘 일어난 일이다.

점심을 마치고, 한창 벼가 익는 논벌을 보러 마을길로 들어섰다. 길 앞, 지붕이 파란 색 농가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났다. 그 집은 장차 사람이 와 살기로 되어 있는 폐가다. 그 집에 벌써 주인이 돌아온 모양이다. 지붕과 기둥만 두고 벽을 모두 헐어내고 있다. 근데 거기서 일하던 사람들이 싸움이 있는지 우루루 집 뒤 고구마며 호박을 심은 언덕으로 달려간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일보다는 새로이 공사를 하고 있는 농가의 구조를 구경하고 있었다. 한참 언성을 높여 다투던 그들이 다시 돌아왔다.

“아니, 배웠다는 사람이 그깟 호박순 건들었다고 대놓고 욕설을 하다니!”

“서울서 살아먹던 버릇 여기 와서도 못 버리는 거지.”

손에 쟁기를 다시 들면서도 그들은 분을 참지 못하는 듯 했다.

 

 

 

 

나는 처음 보는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브라질에 가 외롭게 30여 년을 살다온 주인이라는 남자가 한 달 먼저 와 산다는 내 인사에 하소연하듯 정황을 이야기했다.

벽을 털어낸 목재들을 집 뒤 언덕에 쌓아놓느라 그 ‘배웠다는 사람’밭의 호박순을 다치게 했다는 거다. 그걸 보고 달려온 ‘그 배웠다는 사람’이 이쪽에서 일하는 사람들 들으란 듯 입에 못 담을 욕설을 퍼붓더라는 거다. 호박줄기도 아니고 호박순 두 개 밟힌 걸 가지고 이럴 수 있냐며 혀를 내둘렀다. 외국에 나가 살다 고국이 그리워 돌아왔는데 호박 하나 주지는 못할망정 욕을 해댈 수 있느냐며 내게 그 '배웠다는 사람'을 원망했다.

나는 논벌로 가는 길에 있는 그 호박밭을 보았다. 가즈런히 쌓아놓은 목재들과 호박순과 거리가 멀었다. 나는 그 호박밭 주인과 잠깐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여기 전원주택에 와 상주하고 있는 이다. 자신의 입으로 대학 강단에서 은퇴를 하고 내려왔다고 했었다. 집수리를 하시는 분들도 그 사실을 모두 아는 모양이다. 그들은 그를 ‘배웠다는 사람’으로 지칭했다.

 

 

 

 

나는 그들과 헤어져 벽장골이라는 논벌로 접어들었다.

요 며칠 전, 나도 호박에 관한 묘한 일을 겪었다.

내가 이사 온 집은 앞선 사람이 일 년을 살다가 불과 한 달 전에 비워준 집이다. 그분은 집 주위에 꽃도 심고, 호박도 심어놓았다. 그런데 그가 가고 난 사이로 집 둘레에 풀이 수북하게 자랐다. 나는 낫을 들고 뜰 안에 자란 풀을 베어나가다가 그만 풀숲을 기는 호박순을 건들었다. 호박 줄을 살펴보니 그 끝에 제법 큰 호박이 하나 달려있었다. 나의 부주의였다. 나는 조심성 없는 나를 탓하며 아깝게 큰 파란 호박을 들어 집 마루에 올려놓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때였다.

“저기 저 호박, 우리 호박입니다.”

옆집 아저씨가 어떻게 알고 찾아와 마루에 얹어둔 호박을 가리켰다. 우리 호박이라니! 그건 분명히 우리 집 뜰에서 큰 호박이었다. 그러나 이사 온 지 한 달밖에 안 된 나는 얼른 미안하게 됐다며 호박을 가져다 드렸다.

그 아저씨가 호박을 받아들고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 딸애가 아기를 낳았는데 이게 커서 익으면 먹이려 했는데 유감입니다.”

그러며 그게 자기네 호박임을 표시해 두었다는 나무젓가락을 호박 있던 자리에서 뽑아 보여주었다.

“우리 집에서 이쪽으로 넘어온 겁니다.”

그가 그쯤은 알았어야지요, 하는 눈빛을 보이고는 가버렸다.

나는 멍하니 서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이도 우리나라 굴지의 제약회사 이사를 했다는 분이다. 그 분 집 울담엔 눈에 보이도록 누렇게 익은 호박이 여러 개나 있다. 그러면서도 남의 집 뜰에서 자라는 호박 하나를 제것이라며 굳이 따져서 찾아가는 그 야박함이 미웠다. 

나는 다음 날, 읍내에 나가 잘 익은 호박 하나를 사다가 따님 해 드리라며 놓고 나왔다. 그러자 아, 뭐 이렇게 꼭 사다주시느냐며 그는 내게 웃어보였지만 돌아서는 내 마음은 씁쓸했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도회로부터 먼 이 시골에 와서도 여전히 도에 넘치는 야박함을 숨기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그렇게 묻고나니 그 답이 간단해졌다. 그들의 모습이 다름 아닌 도시를 살아온 나의 모습이었다. 끝없이 경쟁하며, 한 치도 손해 보고는 못사는 차갑도록 야멸찬 도시인의 습성이 바로 그들의 모습이며 나의 모습이었던 거다. 그들은 호박 하나 지키듯 제것을 따지고 지켜내어  대학교수 아니면 제약회사 이사가 됐을 것이다. 그들의 희고 멀쑥한 얼굴 뒤엔 어둡고 냉혹한 또  하나의 얼굴이 숨겨져 있다. 우리는 그런 우리의 얼굴을 모르는 채로 여태 그게 온화한 나의 얼굴이거니 하며 살아왔다.

나의 섬뜩한 얼굴을, 오늘 나는 그들의 얼굴을 통해 보았다.

가끔 사람은 자신이 살던 곳을 멀리 떠나와 살아볼 필요가 있다. 그때 우연히 개울을 흐르는 맑은 물에서 자신의 얼굴을 되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선 확실히 지금 이 자리에서 좀 멀리 떠나보는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