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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찌나, 러시아 현대미술전

미하일 쿠가츠의                                                세르게이 볼코츠의   까르찌나, 러시아 현대미술전권영상  한전 갤러리에 들렀다.요 며칠 전에 본 러시아 미술전이 다시 보고 싶어서다, 처음 본 그림들이었지만 왠지 오래 입은 옷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같은 향수가 나를 이끌었다. 러시아 미술. 러시아 미술에 대해 나는 도통 아는 게 없다. 러시아에 미술이란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그쪽에 문외한이다. 내게 있어 러시아는 의식의 저쪽 동토에 어둡게 묻혀있는 나라다. 아무리 러시아 음악과 러시아 무용과 러시아 박물관과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만났다 해도 그건 또 그거일 뿐이다.  내가 러시아를 안 건 19살 무렵이다. 누나를 졸라 누나..

젤로가 사라졌다 7회 -머리에 댓잎을 꽃은 병사들

이야기 바다에 빠지다  3. 머리에 댓잎을 꽂은 병사들  미추왕  “백성들을 먼저 지키시오.”267년 백제가 신라의 변방 봉산성을 쳐들어오자미추왕이 제일 먼저 한 말이다.이 소식을 들은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봉산 마을 어른이 소리쳤다.“이제는 그 왕을 우리가 지켜 드릴 때입니다!”산성 싸움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이 일어섰다.“싸우러 가자!”“신라를 지키러 가자!”변방 백성들은 활을 메고 봉산성을 향해 달려 나갔다.백제는 벌써 여러 차례 신라를 쳐들어왔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졌다.어질고 덕이 많으신 미추왕이 계시기 때문이다.왕은 나이 많은 분을 공경하였다.왕은 배고픈 이들을 자식처럼 돌보아주셨다.즉위한 지 11년 되는 해였다.나라 곳곳을 두루 돌아보신 뒤 왕은 신하들에게 명을 내렸다.“백성들이 힘들게 농사짓..

아내의 고집

아내의 고집권영상   장맛비가 열흘 동안 이어지고 있다.기상청은 장마답지 않은 이 장마 기간을 ‘한국형 우기’라고 불러야 한단다.며칠 전에 모종한 콩들이 장맛비에 웃자라 쓰러지고 있다.지난해는 서리태 콩 모종 쉰 포기를 모종가게에서 사다가 심었다. 푸른콩 씨는 늦게 얻어 늦는 대로 텃밭에 직파했다.요령이 생긴 올해는 아예 포트에 콩씨를 심어 손수 모종을 길렀다. 모종은 어느 작물이든 이쁘다. 자라기도 잘 자란다.   “푸른콩 씨도 심었지?”콩 모종을 들여다 보던 아내가 물었다.“한번 심어봤으면 되지 뭘 또 심어.”내 말에 아내가 벌컥 화를 냈다.제 손으로 밭 귀퉁이에 고집스레 모판을 만들더니 푸른콩 씨를 꺼내다 심었다. 열흘 만에 아내는 푸른콩 모종을 텃밭에 냈다.일찍 심은 콩은 못 건져도 늦게 심은 콩..

젤로가 사라졌다 6회 -연오와 세오

이야기 바다에 빠지다  2. 연오와 세오  연오가 바위를 타고 가다  “해초 따러 갔다오리다!”연오가 부엌일을 하는 아내 세오에게 일렀다.“파도 조심해요.”세오의 말을 뒤로 하고 연오는 바구니를 끼고 집을 나섰다.여느 때보다 바다가 파랗고 잔잔하다.‘바다 너머 해 뜨는 곳엔 누가 살까.’오늘 따라 괜스런 생각을 하며 바닷가로 내려갔다.안 봐도 안다.어느 갯바위에 해초가 많은지.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해초를 따며 살았으니 그쯤이야 눈을 감고도 안다.연오는 마른 바위에 신을 벗어놓고, 해초가 많은 바위로 건너갔다.한참 해초 따는 일에 정신을 팔고 있을 때다.‘아니, 아니, 이게 어찌 된 거지?’올라앉은 바위가 어디론가 둥둥 떠가기 시작했다.잠깐이 아니었다.갈수록 속도가 붙었다.세오! 세오! 세오! 다급한 연..

젤로가 사라졌다 5회 -석탈해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다  1.석탈해  아기가 배를 타고 오다  바람 부는 날,낯선 배 한 척이 아진포 앞바다로 밀려왔다.‘아니, 웬 밴고?’할머니 아진의선은 바닷길로 나가며 중얼거렸다.이상한 건 까치 떼가 배를 따라오며 우짖는다는 것이었다.옳거니! 배 안에는 사내 아기가 혼자 울고 있었다.할머니는 아기를 덥썩 안고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방에 뉘였다.“너는 누구뇨?”할머니가 아기에게 물었다.아기가 울음을 그치더니 대답했다.“나는 용성국의 왕자다. 어머니가 7년만에 아기를 낳았는데 그만 알을 낳았다. 나는 그 알에서 나왔다.”아기가 소년처럼 말했다.“왕자라면서 어쩐 일로 혼자 여기까지 왔느뇨?”“알에서 나온 자식이라 왕은 나를 불길하다며 내다버리라 명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를 배에 몰래 실어 보내며 가 닿..

나의 동시 나의 이야기

참새야, 미안해권영상   참새 깃털하나길섶에 떨어졌다. 오늘밤요만큼참새가 추워하겠다.  -‘깃털’  솔직히 참새에 대해 미안한 게 많다. 내가 쓴 시들 때문이다.참새들은/ 지도를 가지고 있지./ 그걸로 마을의 경계를 넘지 않고 / 편안히 사는 데 쓰지.// 개똥지빠귀도 지도를 가지고 있지./ 그걸로 마을의 경계를 넘어/ 험난한 시베리아로/ 날아가는데 쓰지. ‘지도’라는 시다. 듣기에 따라서는 텃새와 철새의 숙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도에 얽매여 경계를 넘지 못하는 참새들을 은근히 비꼬고 있다. 나는 그때 그걸 발표해놓고 혹시 어떤 참새분이 쩝쩝 입맛을 다실까봐 걱정했다.‘참새의 하늘’이란 시에서는 참새는 마을 초가지붕 높이 이상의 푸른 하늘을 탐내지 않는다고 쓴 적도 있다. 그 시 역시 빈정거림이 약간 ..

문학비평 2024.06.30

젤로가 사라졌다 4회 -김수로왕과 허황후

나라를 세운 사람들 4. 김수로왕과 허왕후 배가 온다 “바다가 온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일인가.망산도에 올라 바다를 지키고 있던 유천관이 마을을 향해 소리쳤다.“바다가 배를 띄우고 이쪽으로 온다!”또 한 번 소리쳤다.함께 온 시종 젤로가 왕께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봉수대에 연기를 올렸다.사람들이 꽃을 들고 바닷가로 달려나왔다.그리고 밀려오는 바다를 맞으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우리 왕께서 이제 혼일 하실 모양이네.”수로국 사람들은 이제 안심이었다.“하늘이 무심한 게 아니었네.”“그렇다마다. 하늘이 내린 왕이시니 하늘이 왕비를 내려주시는 거지.” 사람들은 꽃을 들어올렸다.붉은 돛을 단, 멋지고 커다란 연꽃 배를 바다가 둥실둥실 띄우며 뭍을 향해 점점 다가왔다.  16살 왕후 바다가 철썩, 하고..

팥 잎싹은 예쁘다

팥 잎싹은 예쁘다권영상  팥을 심었다.태어나 첫 경험이다.서리태 콩은 지난해 가꾸어봤다.밭에 콩씨를 직파한 게 아니라 모종가게에서 파는 콩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장마에 요앞 다리가 끊겼을 때다.쉰 포기. 7월 8일에 심은 걸로 지난해 달력에 적혀 있다.  텃밭에 빈 땅이 있는 걸 알고 아내가 연일 팥! 팥! 팥 타령이다.5월에 도라지 씨앗을 뿌렸는데 하나도 나오지 않아 묵히고 있는 손바닥만 한 빈 땅이 있다. 아내가 그걸 본 거다. 거기다가 심으면 딱이란다.나도 그 생각은 하고 있었다.대농을 하시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팥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다.아버지가 안 계시니 대신 인터넷에 물었다.  중부지방은 6월 중순이 적기란다.때가 마침맞다. 호미로 땅을 헤친 자리에 팥 세 알씩 넣고 묻었다.조루에 물을 ..

새의 뼈처럼 간략한 동시

여는 글 새의 뼈처럼 간략한 동시권영상 동시를 쓰며 살아온 지 오래 됐네요. 45년이나 됐군요. 참 무던히도 긴 세월이었네요. 20대 후반에 등단했으니 내 인생의 가장 푸른 시기를 동시 장르에 바쳐온 느낌입니다. 초기엔 왜 어른들이 동시를 쓰느냐, 그런 말을 듣기도 했지요.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써 온 걸 보면 내가 무던하거나 어리석거나 아니면 동년배 동시인들이 있어 주었고, 선배님들이 자리를 지켜 주셨기 때문이겠죠. 그 덕분에 지금은 시인이라면 누구나 동시집 한 권 갖고 싶어하는 때에 이르렀지요. 오랫동안 동시를 써온 덕에 어떤 글이든 쉬운 말로 따스하게 쓰는 법을 익혔지요. 그게 누구 탓인지는 몰라도 세상의 모든 글쓰기가 지금 그렇게 가고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친구들에게 동시집을 한 권씩 쥐여주면 ..

문학비평 2024.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