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시 참깨동시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5)

권영상 2024. 7. 2. 18:01

<월요 이야기동시 연재>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다

 

 

1.석탈해

 

 

아기가 배를 타고 오다

 

 

바람 부는 날,

낯선 배 한 척이 아진포 앞바다로 밀려왔다.

아니, 웬 밴고?’

할머니 아진의선은 바닷길로 나가며 중얼거렸다.

이상한 건 까치 떼가 배를 따라오며 우짖는다는 것이었다.

옳거니!

배 안에는 사내 아기가 혼자 울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기를 덥썩 안고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방에 뉘였다.

너는 누구뇨?”

할머니가 아기에게 물었다.

아기가 울음을 그치더니 대답했다.

나는 용성국의 왕자다. 어머니가 7년만에 아기를 낳았는데 그만 알을 낳았다. 나는 그 알에서 나왔다.”

아기가 소년처럼 말했다.

왕자라면서 어쩐 일로 혼자 여기까지 왔느뇨?”
알에서 나온 자식이라 왕은 나를 불길하다며 내다버리라 명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를 배에 몰래 실어 보내며 가 닿는 곳에 나라를 세우라 하셨다.”
아기는 말을 하면서도 무럭무럭 자랐다.

할머니는 이 괴이한 왕자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까치가 너를 반겼으니 성은 석이요, 알에서 나왔으니 이름은 탈해다. 석탈해.”

 

 

호공의 집을 빼앗다

 

 

신라에서 제일 큰 집에 벼슬 높은 호공이 살았다.

어느 날, 탈해는 그 집 둘레에 몰래 숯과 숯돌을 묻었다.

그러고는 그 집 마당에 들어가 소리쳤다.

호공 어른, 집을 찾으러 왔소이다!”

아니 너는 뉘 놈이냐?”
호공은 어이없었다.

이 집은 우리 조상님들이 대대로 살던 집이오. 내가 비로소 찾으러 왔소이다.”
아니, 이건 또 웬 억지뇨! 이 집은 내가 손수 지은 집이니라. 썩 물러가라!”

썩 물러가실 분은 호공어른이요.”

어디서 보도 듣도 못 한 자가!”

실랑이 끝에 호공은 관청의 관리를 불렀다.

무슨 근거로 이 집을 네 집이라 하느냐?”
관리가 탈해에게 물었다.

우리 조상님들은 대대로 대장장이 일을 해 왔소. 땅 속을 뒤져 보시오.”

탈해의 말에 관리들은 호공의 집 울타리 여기저기를 파봤다.

아니, 숯이 나오네.”

아니, 숯돌이 나오네.”
아니, 조상이 대장장이였다는 탈해의 말이 맞네.”

탈해는 이 그럴싸한 계략으로 호공을 멋진 집을 차지했다.

 

 

남해왕의 사위가 되다

 

 

그대는 매우 담대하도다. 내 사위가 되어 주면 어떻겠는고?”

소문을 들은 남해왕이 탈해를 불렀다.

아니 되옵니다. 어찌 이주민인 제가 어찌.”
탈해는 사양했다.

말은 그러했지만 탈해의 눈빛이 번쩍였다.
아니다. 내 사위가 될 만하도다.”

아니 되옵니다. 어찌 힘 없는 제가.”
말은 그러했지만 탈해의 덩치는 신라 사람들과 비교가 안 될 만큼 컸다.

아니다. 내 청을 거절하지 마라.”

아니 되옵니다. 어찌 미약한 제가.”

그러는 털부숭이 탈해의 입가에 약간의 웃음빛이 보였다.

탈해는 그렇게 남해왕의 사위가 되었고. 그 얼마 뒤

남해왕은 덜컥 세상을 떴다.

 

 

떡을 깨물다

 

 

왕의 자리가 오래도록 비었다.

유리 왕자님께서 어서 왕위에 오르소서.”

탈해의 말에 유리 왕자가 사양했다.

아니오. 탈해 매형께서 오르소서.”
아니라오. 유리 왕자님께서 오르소서.”

아니오. 매형께서 오르소서.”
왕의 자리를 놓고 며칠을 밀고 당기는 사이 신하들의 머리에서 묘안이 나왔다.

떡을 깨물어 이가 많은 분이 왕이 되게 하심이 좋겠나이다.”
신하들의 말은 맞았다.

이가 많다는 건 나이가 많다는 뜻이지.

나이가 많다는 건 경험이 많다는 뜻이고.

경험이 많다는 건 당연히 실수가 적다는 뜻이지.

두 사람은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떡을 깨물고, 깨문 떡에 찍힌

이의 갯수를 하나 둘 서이 너이 다 여, 세었다.

유리 왕자님 이가 저보다 많으시군요.”
유리는 이가 많은 덕에 매형을 제치고 아슬아슬하게 신라 제 3대 왕이 되었다.

 

 

젤로가 나타나다

 

유리왕도 떠나고, 탈해도 나이를 먹었다.

나이 62, 그해 석탈해는 비로소 신라 제 4대 임금이 되었다.

배가 가 닿는 곳에 나라를 세우라.’ 하신

어머니의 말씀이 떠오르는 밤이었다.

잠들지 못하여 산책하는 왕의 곁으로 풍뎅이 한 마리가 날아왔다.

누구냐?”
왕이 놀라 물었다.

나는 2024년 먼 미래의 나라 서울에서 왔소.”

근데 왜 이 먼 과거로 찾아 왔느냐?”

당신이 너무 궁금해서 왔소. 대체 당신은 누구요?”
왕이 대답했다.

나는 캄차카에서 온 이주민이다.”
“하필이면 왜 신라로 이주해 온 거요?”
젤로의 물음에 왕이 뜻밖의 대답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어렸을 당시 신라는 이주민의 천국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어느 나라보다 이주민들에게 열려 있는 나라였다. 혁거세 시조왕께서도 북방에서 이주해 오셨고, 호공도 일본에서 이주해 오셨지만 모두 높은 자리에 오른 분들이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김알지 어른 역시 남방에서 이주해 오신 분이군요."

젤로의 머릿속에 퍼뜩 김알지가 떠올랐다.

"그렇다. 신라는 열심히 뛰면 이민자라 하여도 성공하는 꿈의 나라다."

왕은 밤이 이슥해도 지치지 않았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호공의 집은 왜 빼앗았나요?”
빼앗은 게 아니다. 그도 나와 같은 이주민이라 내 처지를 알고 집을 넘겨주신 거다.”
진짜 궁금한 게 있소. 어떻게 남해왕의 사위가 되었소?”
선왕은 이주해온 내 능력을 보신 것이다.”

“62, 적지 않은 연세인데, 훌륭한 왕이 되어 주시오.”
젤로가 작별인사를 했다.

그대 이름을 알고 싶다.”
내 이름은 젤로요. 제일로.”

그때 자정을 알리는 동종소리가 났고,
초록풍뎅이는 별빛을 향해 부웅 날아올랐다.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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