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시 참깨동시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7)

권영상 2024. 7. 15. 12:40

<월요 이야기 동시 연재>

 

 

이야기 바다에 빠지다

 

 

3. 머리에 댓잎을 꽂은 병사들

 

 

미추왕

 

 

“백성들을 먼저 지키시오.”

267년 백제가 신라의 변방 봉산성을 쳐들어오자

미추왕이 제일 먼저 한 말이다.

이 소식을 들은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봉산 마을 어른이 소리쳤다.

“이제는 그 왕을 우리가 지켜 드릴 때입니다!”

산성 싸움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이 일어섰다.

“싸우러 가자!”
“신라를 지키러 가자!”

변방 백성들은 활을 메고 봉산성을 향해 달려 나갔다.

백제는 벌써 여러 차례 신라를 쳐들어왔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졌다.

어질고 덕이 많으신 미추왕이 계시기 때문이다.

왕은 나이 많은 분을 공경하였다.

왕은 배고픈 이들을 자식처럼 돌보아주셨다.

즉위한 지 11년 되는 해였다.

나라 곳곳을 두루 돌아보신 뒤 왕은 신하들에게 명을 내렸다.

“백성들이 힘들게 농사짓는 일에 나랏일이 방해되지 않도록 하시오.”

왕은 나랏일보다 늘 백성이 먼저였다.

즉위 23년 10월,

별이 지듯 김씨 성을 가진 미추왕은 운명하였다.

 

 

홀연히 나타난 댓잎 병사

 

 

미추왕이 가시고 석씨인 유례이사금이 제14대 왕이 되었다.

297년 날로 강성해지던 작은 나라 이서국이 신라로 쳐들어왔다.

그들의 군대는 강했고, 무기는 날카로웠다.

전세가 점점 이서국 쪽으로 기울었다.

“대왕마마, 우리 신라군이 크게 지고 있사옵니다. 후퇴를 명하소서.”

전령이 달려와 아뢰었다.

“대왕마마!”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또 다른 전령이 달려왔다.

“머리에 댓잎을 꽂은 군사들 도움으로 적들이 모두 달아났나이다.”

왕은 어리둥절했다.

“근데 그 군사가 어느 나라 군사이던가?”
왕은 궁금했지만, 군사는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그들 모두 머리에 댓잎을 꽂고 싸웠나이다.”
연이어서 또 한 명의 전령이 달려왔다.

“대왕마마, 미추왕릉 옆에 댓잎이 수북이 쌓여있는 걸 봤다는 전갈이 옵니다. 댓잎을 머리에 꽂고 싸운 그 병사들의 것이 분명하옵니다.”
이상한 일은 끝없이 이어졌다.

 

 

귀신들이 나라를 돕다

 

 

‘우리를 도와준 그들은 누구일꼬?’

유례왕은 어두워질 때까지 그 생각에 잠겼다.

그때였다.

유례왕의 그 꼬불꼬불한 생각의 길목에 젤로가 들어섰다.

젤로는 그 길 끝에서 놀라운 장면을 만났다.

“마마, 분부대로 이서국을 물리치고 돌아왔나이다.”

머리에 댓잎을 꽂은 장수 하나가 방금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모습으로 왕이라는 이에게 고하였다.

젤로는 발길을 멈추었다.

“오오, 신라를 사랑하시는 장군이시여! 수고하셨소.”

그러는 왕과 장수의 모습이 이상했다.

예사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림자 같기도 하고, 물방울 같기도 하고, 아지랑이 같기도 하고. 사라졌다가는 나타나고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 했다.

 

 

왕이라는 분은 어디선가 한번 본 듯했다.

젤로가 용기를 내어 나섰다.

“마마! 마마께서는 혹시 돌아가신 미추 이사금 마마가 아니신지요?”

젤로가 왕좌에 앉은 왕을 향해 여쭈었다.

그러나 젤로의 목소리는 이 안에 있는 그 누구의 귀에도 가 닿지 않았다.

왕은 왕좌에서 일어나 장군과 함께 껄껄껄 웃으며

대전을 나가고 있었다.

“미추 이사금 마마!”

젤로가 다시 왕을 불렀지만, 두 사람은 유유히 사라졌다.

여기는 분명, 사람이 사는 세상과 다른 세상이었다. 굽이굽이 천길 땅속이든가 구름 위 하늘이든가, 아니면 숲속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세상이든가.

왕은 14년 전에 돌아가신 미추왕이 틀림없었다.

‘그래. 미추왕께서 고비고비마다 우리 신라를 지켜주시는구나!’

유례왕은 그쯤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 한 줄기가 유례왕의 머릿속을 지나가고 있었다.

“위기 때마다 신라를 돕겠소!”

좀 전에 듣던 미추왕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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