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이야기 동시 연재)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다
4. 명장 이사부
북을 쳐라
“돛을 올려라!”
전함에 오른 이사부 장군이 전군에 명했다.
세 척의 전함이 일시에 돛을 올렸다.
“대왕마마의 명을 받아 우리는 우산국을 정벌하러 간다! 북을 쳐라!”
장군이 출정 신호를 보냈다.
둥, 둥, 둥, 둥
북소리가 동해 바다를 울렸다.
드디어 함대가 깃발을 휘날리며 우산국을 향해 노를 저었다.
지증왕 13년, 6월, 순풍이 부는 맑은 날이다.
동쪽 바다 끝 우산국은 신라에 무릎을 꿇어놓고도 약속을
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공물을 바치지 않은지 오래 되었소. 깊은 바다를 믿고 오만하여 신하 노릇을 아니 하는 것이오.
그러니 이사부 장군!”
왕이 이사부 장군을 불렀다.
“그대가 이번 기회에 항복을 받아오시오.”
“그러하오이다. 마마.”
이사부 장군이 하슬라 군주가 되어 가던 그 해의 일이다.
명장, 이사부 장군
신라 최고의 명장, 이사부라면
그깟 자그마한 우산국 정벌쯤은 일도 아니다.
신라 주변의 나라들은 백전백승의 이사부 장군을 두려워했다.
장군은 가야와 백제는 물론 고구려와 왜국을 쳐들어가 싸웠지만 한번도
져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다르다.
우산국은 배로 이틀을 가야하는 동쪽 먼 바다에 있는 섬이다.
아무리 명장이어도 풍랑을 만나면 군사를 잃을 수 있고,
먼 뱃길은 병사들을 지치게 하는, 힘겨운 희생을 요구한다.
장군은 희생 없이 이기는 길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때 장군의 머리에 마숙이 떠올랐다.
마숙이란 말을 타고 노는 신라 병사들의 경기 중의 하나다.
장군 거도가 가야의 변경 관리로 일할 때다.
가야를 정벌하기 위해 변경의 가야군 병사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거도는 마숙 경기를 예고했다.
그러나 그것은 속임수였다.
즐거운 표정으로 기병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기병들이 모두 모였을 때
장군 거도는 무방비 상태인 가야를 향해 돌진 명령을 내렸다.
“공격하라!”
가야는 둑처럼 무너지고 말았다.
이사부 장군의 머리에 그 속임수가 떠올랐다.
사자에 뿔이 달렸나요
‘그래. 나무사자다!’
장군은 무릎을 탁 쳤다.
무지한 섬사람이어도 사자 무서운 걸 모를 리 없다.
날카로운 이빨과 사나운 발톱, 그리고 비호같은 공격,
말만 들어도 벌벌 떨다 못해
선 자리에서 오줌을 지리며 항복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러나 막상 나무 사자를 만드려고 하자, 문제가 생겼다.
“사자 무섭다는 건 알겠는데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생겼지요?”
“뿔은 있나요? 두 갠가요?”
“빠르니까 날개도 있겠지요?”
통나무를 앞에 놓고 쟁기를 집어든 목공 장인들은 막막했다.
그때 장군은 옳지! 하고 벌떡 일어섰다.
군주가 되어 하슬라로 부임받아 오던 날, 어머니가 주신 선물이 떠올랐다.
인도에서 들여온, 부처님 말씀을 적은 경전이었다.
거기에 사자 그림이 있었다.
장군은 나무를 깎아 사자를 만드는 장인들에게 그 그림을 보여주었다.
나무사자로 항복을 받다
보기만 해도 무서운 나무사자 12마리는
세 척의 전함에 실려 병사들과 함께 전장터로 가고 있었다.
전함은 바람을 가득 싣고 달려 우산국이 바라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우산국 병사들은 신라군과 싸우기 위해
높은 언덕에 올라 전함이 가까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손엔 칼이 들려 있었다.
활이 들려 있었다.
들것엔 돌덩이가 담겨 있었다.
“가까이! 두려워 말고 더 가까이!”
이사부 장군은 적의 화살이 날아올 만한 거리까지 다가가자
우산국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나는 신라왕의 명을 받들고 온 이사부 장군이다. 두려워 말고 내 말을 들으라.”
장군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했지만
섬사람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도 했다.
이사부 장군이란 말에 그들은 숨죽은 듯 조용했다.
“우리 신라군의 목숨은 그 누구의 목숨보다 중하다. 그만큼 나는 너희들 목숨도 중히 여긴다.
그대들과 나는 싸우고 싶지 않다. 나와서 항복하라.”
이사부 장군은 항복을 요구했다.
저쪽에서 잠시 술렁대는 소리가 들렸다.
“거부한다면 너희들 섬에 이 사자를 풀어놓겠다. 여기를 보아라!”
장군의 말이 끝나자, 세 척의 전함에서 일제히 흰 천을 벗겼다.
사자 12 마리가 싯붉은 아가리를 벌리고 사납게 울부짖었다.
“자, 어쩔 것이냐? 사자의 밥이 되겠느냐? 항복하여 신라 백성이 되겠느냐?”
가라앉을 듯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장군! 항복하겠소이다.”
우산국 우두머리의 목소리였다.
연이어 우산국 병사들이 항복했다.
“이사부 장군, 장군의 명성을 몰라 보았나이다!”
그들은 전함 속 사자들을 내려다 보며 벌벌벌 떨었다.
어떤 이들은 절을 하기도 했다.
“제발 사자를 거두소서. 우리는 살고 싶소.”
우산국 정벌은
서로 간에 손끝 하나 다치지 않고 이렇게 끝났다.
그해가 지증왕 13년, 서기로 512년 6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