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이야기동시 연재>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다
5. 비형랑
귀신의 아들로 태어나다
복숭아꽃 피는 이슥한 봄밤,
혼자 살고 있는 도화의 방문이 흔들렸다.
켜 둔 촛불이 춤추듯 흔들리더니
훅 꺼졌다.
‘복사꽃 바람이 부는 모양이구나!’
도화가 다시 불을 켜려는데 눈앞에 누군가 어른거리며 서 있었다.
“아니! 당신은.”
도화가 놀라 손으로 입을 가렸다.
좀 어둡기는 했지만 도화는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았다.
“돌아가신 지 2년이나 되는 분이 여긴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이까?”
어른거리는 그는, 죽은 진지왕이었다.
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왕은 그렇게 7일을 머물다가 홀연히 떠나갔다.
그 후, 도화가 아들을 낳았다.
그가 비형이다.
비형은 반은 귀신이고, 반은 사람이다.
소문
진평왕이
바람결에 들려오는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그 아이가 돌아가신 선왕의 아들이란 말이 맞소이까?”
왕이 상대등에게 물었다.
“그렇나이다. 비형은 생각하는 대로 몸을 바꿀 수 있고, 생각하는 대로 어디든 날아갈 수 있고.”
왕이 상대등의 말에 덧붙였다.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고?”
“그렇나이다. 사람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는 소문을 소신도 들었나이다.”
그 일이 있고 사흘 뒤 왕이 비형을 불렀다.
비형이 댓잎을 타고 날아와 궁궐 마당에 내려섰다.
“부르셨나이까.”
옷자락은 보이는데 몸은 보이지 않았다.
왕이 말했다.
“그대가 선왕의 아들이라 하니 그대에게 벼슬을 내리고 싶도다.”
왕은 제사를 담당하는 집사 벼슬을 그에게 내렸다.
귀신이 뚝딱 다리를 놓다
비형은
늘 젖은 옷으로 입궁했다.
비형은 자신의 행색에 대해 왕에게 솔직히 아뢰었다.
“밤이면 서쪽 황천강 언덕으로 날아가 귀신들과 늦도록 놀다가
이슬을 맞으며 돌아오는 바람에 늘 옷이 젖나이다.“
듣고 있던 왕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오오, 참 기이한 일이로다. 그런데 그대와 노는 그 자들은 대체 몇이나 되는고?”
왕이 다시 물었다.
“대략 서른은 될 것이 옵니다.”
그 말에 왕이 비형을 가까이 불렀다.
“신원사로 건너가는 개천에 다리를 놓아줄 수 있겠느냐?”
신원사는 왕이 종종 찾아가는 절인데 비가 오면 물이 불어 다리가 떠내려갔다.
“그리하겠나이다.”
대답을 마치고 궁을 나간 비형이
다음 날 아침, 다시 젖은 옷으로 왕을 찾아왔다.
“대왕마마, 분부하신 다리를 밤새 놓았나이다.”
옷자락 속에 숨은 비형이 말했다.
“오호오, 한 달도 부족할 텐데 하룻밤 새에 다리를 놓았다?”
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놀라워했다,
“신과 같은 이들에게 있어 그런 일쯤은 너무도 사소한 명이옵나이다.”
그러고 비형이 물러났다.
비형은 황천강 너머 귀신들을 불러 모아 하룻밤 사이 뚝딱 다리를 놓았다.
길달이 나랏일을 돕다
왕은 비형이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어느 날, 왕이 비형에게 물었다.
“혹 그대들 중에 나랏일을 도와줄 만한 이가 있느뇨?”
왕은 변방을 침범하는 나라들과 싸우랴, 예기치 못한 가뭄과 싸우랴, 고충이 심했다.
이제는 좀 안심하고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었다.
“있나이다. 길달이란 자가 적합하겠나이다.”
“그를 만나고 싶도다.”
왕은 비형에게 각별한 마음을 보냈다.
비형은 대전문 뜨락에 나가 황천강 숲에서 잠자고 있는 길달을 불렀다.
“길달을 데려 왔나이다.”
한순간이었다.
그는 비형과 달리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내 그대에게 아버지를 정해주고 싶다. 부디 그의 아들로 성실히 살며 나랏일을 도와 달라.”
왕은 아들이 없는, 대신 임종에게 그를 부탁했다.
“흥륜사 앞쪽의 허물어진 성을 견고하게 쌓아다오.”
어느 날, 왕은 길달에게 명을 내렸다.
길달은 밤이면 황천강 언덕의 귀신들을 불러 뚝딱뚝딱 성을 쌓았다.
성문 또한 튼튼하고 멋들어지게 만든 뒤 제 이름을 따 길달문이라 했다.
“성도 문도 만들었으니 잔치를 벌이자.”
길달은 밤마다 귀신들을 불러 길달문 위에서 놀았다. 술도 마시고, 장난도 치고, 이야기도 하고, 씨름도 하고, 그러다 지치면 새벽닭이 울 때까지 쿨쿨 잤다.
왕도 이 모든 소식을 듣고 있지만
길달은 무엇보다도 나라에 도움이 되는 자였다.
여우로 변한 길달
“길달이 사라졌다!”
어찌된 일인지 그믐달 뜨는 밤, 길달문 위의 길달이 보이지 않았다.
“여우로 변하여 도망가는 걸 봤수다! 저기 황천강 너머로.”
흥륜사 근방에 사는 노인이 그가 달아난 곳을 가리켰다.
그 소식을 들은 비형이 귀신들을 모아
그를 붙잡아 처참히 죽였다.
그 밤, 풍뎅이 한 마리가 비형 곁으로 날아왔다.
“길달을 왜 죽였는가?”
젤로가 물었다.
“그는 왕의 신하임을 잊고 달아났으며, 밤마다 방탕했다.“
”그쯤은 이해하겠다. 근데.“
”근데 뭐냐?“
”하룻밤새 다리를 놓고 성을 쌓는 너희들은 귀신이라기보다 도깨비가 아닌가?“
젤로는 그게 몹시 궁금했다.
“예리하다. 우리는 이 땅에 오래전부터 살아온 두두리도깨비들이다. 배운 자들이 도깨비를 귀신으로 적었을 뿐이다.
'뚝딱!' 이 소리를 아느냐? 우리들만이 만들어내는 소리다.“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젤로가 방망이질을 해 보였다.
“그렇다. 이렇게 만난 김에 씨름 한 판 어떻겠는가?”
비형의 요청에 젤로가 비겁하게 날아올랐다.
“자신 없소이다!”
비형은 귀신의 우두머리였다
비형이 길달을 처참히 죽였다는 소문은 또 바람을 타고 금성을 들쑤시고 다녔다.
“그러고 보니 비형이 귀신의 왕일세 그려.”
“그렇다마다. 비형에게 밉보이면 어느 귀신도 살아남지 못한다네!”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떤다지.”
모이면 한 마디씩 했다.
아마 그때부터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집 처마에 여기는 ‘비형의 집’이라 글씨를 써 붙였다.
암만 사나운 귀신도 그 글씨를 보면 ‘귀신아, 나 살려!’ 하고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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