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시 참깨동시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4)

권영상 2024. 6. 24. 21:10

<월요 이야기 동시 연재>

 

나라를 세운 사람들

 

4. 김수로왕의 허왕후

 

배가 온다

 

“바다가 온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일인가.

망산도에 올라 바다를 지키고 있던 유천관이 마을을 향해 소리쳤다.

“바다가 배를 띄우고 이쪽으로 온다!”

또 한 번 소리쳤다.

함께 온 시종 젤로가 왕께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봉수대에 연기를 올렸다.

사람들이 꽃을 들고 바닷가로 달려나왔다.

그리고 밀려오는 바다를 맞으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우리 왕께서 이제 혼일 하실 모양이네.”

수로국 사람들은 이제 안심이었다.

“하늘이 무심한 게 아니었네.”

“그렇다마다. 하늘이 내린 왕이시니 하늘이 왕비를 내려주시는 거지.”

사람들은 꽃을 들어올렸다.

붉은 돛을 단, 멋지고 커다란 연꽃 배를 바다가 둥실둥실 띄우며

뭍을 향해 점점 다가왔다.

 

 

16살 왕후

 

바다가 철썩, 하고 절반으로 열렸다.

연꽃 배에서 키 크고 예쁜 여인이 그 일행과 함께 걸어 나왔다.

그들의 몸에서는 이 세상에서 맡아보지 못한 향내가 났다.

사람들은 그들이 가는 길에 꽃을 뿌렸다.

일행은 수로왕이 계시는 왕궁으로 꽃잎을 밟으며 걸었다.

“왕후, 어서 오시오!”

수로왕이 벌써 그 여인을 왕후라고 불렀다.

“저는 아유타국의 공주이며 성은 허씨고, 이름은 황옥, 16살이옵니다.”

목청이 아침 샘물처럼 맑았다.

“먼 길을 오시느라 노고가 많았소. 아시다시피 나는 하늘의 명을 받고 내려와 수로국의 왕이 되었소. 하늘이 오늘 당신을 내게 보내주신다 하였으니 그대는 나의 왕후가 되어주시오.”

왕이 정중히 청했다.

“그러하오이다.”

여인이 정중이 대답했다.

이윽고 궁궐 안이 밝은 햇빛으로 가득 차올랐다.

 

 

소년 시종이여

 

 

수로왕이 허왕후와 뜰을 걷고 있을 때였다.

“왕이시어! 청이 하나 있사옵니다.”

시종 젤로가 허리를 굽혀 왕과 왕비 앞에 나섰다.

“무엇인고? 미래 나라의 소년 시종이여.”

젤로가 마음에 품고 있던 생각을 아뢰었다.

“왕자를 낳으시거든 그분들 중 몇 분의 성을 왕후님의 성으로 하여주옵소서.”

“대체 어쩐 일로?”

“하늘이 맺어주신 두 분이니 그 성도 공평하게 나누어야 할 테지요.”

왕이 얼굴에 잔뜩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역시 평등한 미래 나라의 소년 시종답구나. 너의 말을 따라 첫째와 둘째는 그 성을 김해 허씨로 하고, 셋째부터는 나의 성을 따라 김해 김씨로 하리라.”

이건 너무나도 놀라운, 뜻밖의 대답이었다.

그 옛날, 그 어느 나라에도 없는, 자식에게 엄마의 성을 내리는 일이 생겼다.

“감사하옵니다. 왕이시어.”

젤로보다 허왕후가 먼저 인사를 올렸다.그것은 허왕후의 뜻이기도 했다.

껄껄껄 웃으시는 왕의 웃음 끝으로 초록 풍뎅이 한 마리가 붕, 날아올랐다.

미래로 가는 시간 버스가 바람 뒤에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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