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젤로가 사라졌다(연재2)

권영상 2024. 6. 10. 21:36

<월요 이야기 동시 연재>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2)

 

 

나라는 세운 사람들

 

 

2. 온조

 

부러진 칼

 

 

저녁을 마쳤다.

왕궁의 서편 하늘로 꽃빛 같은 노을이 뜬다.

고구려를 탄탄한 기반 위에 올려 놓느라 동명성왕은 가족과 함께 노을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그건 소서노 왕비도, 소서노의 두 아들 비류와 온조 역시 그랬다.

부인의 힘이 아니었다면 우리 고구려가 이렇게 번듯해지지 못했을 것이오.”

왕이 왕비의 손을 잡았다.

왕의 손길이 따뜻했다.

과분한 칭찬이시옵니다.”

왕비의 대답이 끝나자,

그리고!”

왕이 말머리를 돌렸다.

마주 앉은 비류와 온조를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아들들아! 너희 역시 나라를 굳건히 하는데 큰 힘을 보태주었구나.”

그 말에 소서노 부인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내 아들들아라니!

얼마나 들어보고 싶은 왕의 말이었던가.

왕이 다시 말했다.

그 동안 비류는 고구려를 이끌어갈 만큼 장성해졌다!”

왕의 말에 비류와 온조가 일어나 가벼이 절을 했다.

그들의 등 뒤로 다시 한번 노을이 환히 빛나다가 스러졌다.

머지않아 비류가 동명성왕의 후계자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밤이었다.

 

3월이 가고, 4월이 들어서는 어느 오후였다.

왕을 만나러 왔소!”

낯선 사내가 왕을 만나러 왔다며 궐 안에 들어섰다.

왕을 만나게 해 주시오!”

사내가 다시 소리쳤다.

내가 왕이다. 너는 누구냐?”

왕이 내전의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사내가 품에서 부러진 칼끝을 꺼내 보였다.

그러자 왕이 장속에 깊숙이 넣어둔 부러진 칼을 꺼내왔다.

거기에 칼끝을 맞추었다. 어김이 없었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 아들 유리이옵니다.”

북부여에 있을 때 예씨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유리가

부러진 칼을 품고 돌아왔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그믐달이 음흉하게 뜬 그날 밤.

어머니, 고구려를 떠나야겠어요.”

곧 왕이 될 줄 알았던 비류가 어머니와 동생 온조 앞에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왕은 비겁해요! 아무리 당신의 아들이 아니라 해도 어머니와 형님이 세운 공이 있는데 달랑 부러진 칼끝을 들고온 자를 태자로 삼으시다니!”

온조가 울음을 삼켰다.

그 때문에 위험한 일이 닥칠 수 있어요.”

위험한 일이라니!”

대소왕자에게 쫓겨난 주몽을 보고도 그러세요. 어서 이 궁을 떠나요.”

어디로?”

비류가 물었다.

꽃 피는 남쪽 땅으로요.”

비류가 낯선 목소리를 향해 물었다.

너는 누구냐?”

나는 미래의 나라 서울에서 온 젤로라고 하오.”

젤로의 아바타인 푸른 풍뎅이가 그 말 끝으로 창문 밖 그믐달을 향해 날아갔다.

젤로의 말이 맞다. 왕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리지 말자꾸나.”

소서노 부인이 떠날 짐을 챙겼다.

그렇게 그들은 아침 해가 뜨기 직전 궁궐을 떠났고, 수많은 백성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믐밤 뒤라 아침은 더욱 밝았다.

어찌된 일인지 그날, 왕이 죽었다.

 

 

백제를 세우다

 

여러분, 힘 내시오. 우리가 꿈꾸던 나라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소!”

비류는 따르는 무리들을 격려했다.

사흘을 쉬지 않고 걸었다.

서두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게으른 걸음도 아니었다.

조금만 더 참으시오. 곧 우리가 꿈꾸는 나라에 가 닿을 것입니다.”

동생 온조도 무리 사이를 오가며 땀을 닦아주고 손을 이끌어 주었다.

모두들 비류와 온조의 넉넉한 성품을 믿었다.

우리가 꿈꾸는 나라라니! 듣기만 해도 마음이 설레네그려.”

봇짐을 추어올리며 누군가가 한 마디 했다.

듣기만 해도 배부르네요.”

아기 손목을 잡고 걷는 아기 엄마였다.

춤이라도 추고 싶군요.”

또 누군가가 말했다.

그렇게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다가 일행은 갈림길 앞에서 멈추었다.

온조야, 나는 미추홀로 가 나의 꿈을 펼칠 것이다.”

비류가 서쪽으로 가는 윗길로 들어섰다.

형님, 저는 저기 강 건너 위례에다 저의 꿈을 펼치겠습니다.”

온조는 강을 바라보며 아랫길로 내려섰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서로 꿈꾸어온 나라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