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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시 나의 이야기

참새야, 미안해권영상   참새 깃털하나길섶에 떨어졌다. 오늘밤요만큼참새가 추워하겠다.  -‘깃털’  솔직히 참새에 대해 미안한 게 많다. 내가 쓴 시들 때문이다.참새들은/ 지도를 가지고 있지./ 그걸로 마을의 경계를 넘지 않고 / 편안히 사는 데 쓰지.// 개똥지빠귀도 지도를 가지고 있지./ 그걸로 마을의 경계를 넘어/ 험난한 시베리아로/ 날아가는데 쓰지. ‘지도’라는 시다. 듣기에 따라서는 텃새와 철새의 숙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도에 얽매여 경계를 넘지 못하는 참새들을 은근히 비꼬고 있다. 나는 그때 그걸 발표해놓고 혹시 어떤 참새분이 쩝쩝 입맛을 다실까봐 걱정했다.‘참새의 하늘’이란 시에서는 참새는 마을 초가지붕 높이 이상의 푸른 하늘을 탐내지 않는다고 쓴 적도 있다. 그 시 역시 빈정거림이 약간 ..

문학비평 2024.06.30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4)

나라를 세운 사람들 4. 김수로왕의 허왕후 배가 온다 “바다가 온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일인가.망산도에 올라 바다를 지키고 있던 유천관이 마을을 향해 소리쳤다.“바다가 배를 띄우고 이쪽으로 온다!”또 한 번 소리쳤다.함께 온 시종 젤로가 왕께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봉수대에 연기를 올렸다.사람들이 꽃을 들고 바닷가로 달려나왔다.그리고 밀려오는 바다를 맞으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우리 왕께서 이제 혼일 하실 모양이네.”수로국 사람들은 이제 안심이었다.“하늘이 무심한 게 아니었네.”“그렇다마다. 하늘이 내린 왕이시니 하늘이 왕비를 내려주시는 거지.” 사람들은 꽃을 들어올렸다.붉은 돛을 단, 멋지고 커다란 연꽃 배를 바다가 둥실둥실 띄우며 뭍을 향해 점점 다가왔다.  16살 왕후 바다가 철썩, 하고..

팥 잎싹은 예쁘다

팥 잎싹은 예쁘다권영상  팥을 심었다.태어나 첫 경험이다.서리태 콩은 지난해 가꾸어봤다.밭에 콩씨를 직파한 게 아니라 모종가게에서 파는 콩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장마에 요앞 다리가 끊겼을 때다.쉰 포기. 7월 8일에 심은 걸로 지난해 달력에 적혀 있다.  텃밭에 빈 땅이 있는 걸 알고 아내가 연일 팥! 팥! 팥 타령이다.5월에 도라지 씨앗을 뿌렸는데 하나도 나오지 않아 묵히고 있는 손바닥만 한 빈 땅이 있다. 아내가 그걸 본 거다. 거기다가 심으면 딱이란다.나도 그 생각은 하고 있었다.대농을 하시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팥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다.아버지가 안 계시니 대신 인터넷에 물었다.  중부지방은 6월 중순이 적기란다.때가 마침맞다. 호미로 땅을 헤친 자리에 팥 세 알씩 넣고 묻었다.조루에 물을 ..

새의 뼈처럼 간략한 동시

여는 글 새의 뼈처럼 간략한 동시권영상 동시를 쓰며 살아온 지 오래 됐네요. 45년이나 됐군요. 참 무던히도 긴 세월이었네요. 20대 후반에 등단했으니 내 인생의 가장 푸른 시기를 동시 장르에 바쳐온 느낌입니다. 초기엔 왜 어른들이 동시를 쓰느냐, 그런 말을 듣기도 했지요.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써 온 걸 보면 내가 무던하거나 어리석거나 아니면 동년배 동시인들이 있어 주었고, 선배님들이 자리를 지켜 주셨기 때문이겠죠. 그 덕분에 지금은 시인이라면 누구나 동시집 한 권 갖고 싶어하는 때에 이르렀지요. 오랫동안 동시를 써온 덕에 어떤 글이든 쉬운 말로 따스하게 쓰는 법을 익혔지요. 그게 누구 탓인지는 몰라도 세상의 모든 글쓰기가 지금 그렇게 가고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친구들에게 동시집을 한 권씩 쥐여주면 ..

문학비평 2024.06.22

아침에 아내가 말했다

아침에 아내가 말했다권영상   “오늘 어디 좀 나갈 데 없어?”아침에 아내가 말했다.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얼른 알아차렸다.“알았어.”식사를 마치고 어디 마땅히 갈 데도 없으면서 길을 나섰다.캔버스를 세워놓고 붓 한 번 잡지 못하는 아내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집에 누가 있으면 마음이 열리지 않아 불편할 때가 있다. 그게 부부라거나 자식이어도 그렇다.  풍부한 자유를 받아들고 쫓겨나듯 집을 나서고 보니 막막했다. 전철에 올랐다. 그제야 갈 곳이 떠올랐다. 종묘다. 며칠 전, 서순라길 모임을 한 적이 있었다. 종묘 담장을 끼고 순라꾼들이 다니던 그 길을 걸어 북촌까지 갔었다. 그때 종묘 담장 너머로 보이던 늙은 갈참나무 숲이 궁금했다. 왜 이씨 종묘에 오얏나무가 아니고  갈참나무일까.종로 3가역에서 내려 ..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3)

나라를 세운 사람들 3. 박혁거세백마가 내려오다 여기는 신라, 기원전 57년. 안개가 천천히 걷히면서 빛 한 뭉치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백마다!”젤로가 하얀 빛 뭉치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백마가 내려오고 있어!” 젤로의 목소리가 또 한 번 마을을 울렸다. 골목마다 아이들이 밤아람처럼 굴러나왔다.  뭐래? 뭐래? 하며 털부숭이 누렁개들이 달려나왔다. 낮별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워디? 워디? 하며 두건을 쓴 어른들이 달려나왔다. 좀처럼 거둥을 않으시던 고허촌장님이 어기적어기적 걸어나왔다. 백마는 그 사이 양산기슭 우물가에 내려와 으헝으헝 울었다.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애.” 젤로가 앞서 달려가며 말했다. “어쩌면 큰 선물을 가져왔을지 몰라.” 눈초롱이도 뭔가 야릇한 느낌이 있었다. 무..

아침에 물을 주다

아침에 물을 주다권영상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곧장 텃밭으로 나간다. 흙과 직면하여 사는 게 오랜 꿈이었다. 가뭄에 텃밭에 나가면 할 일이 있다. 작물에 물을 주는 일이다.밭에 토마토 20포기가 크고 있다. 안성에 내려온 지 11년째인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토마토를 가꾸었다. 토마토에 대한 아련한 십 대의 기억이 있다. 어머니 병환 때문에 아버지는 돈이 될 만한, 당시의 특용작물인 토마토 농사를 지으셨다. 나를 앞세워 토마토 모종을 밭에 내고, 나를 앞세워 토마토가 익으면 읍내 가게에 내다팔던, 좀은 쓸쓸했던 과거가 이 나이 먹도록 내 몸에 상처처럼 남아있다.  토마토를 사주는 가게가 없으면 손수레를 끌고 10리길을 그냥 돌아왔다. 그때 아버지는 마른기침을 얼마나 하시던지. 토마토가 병원비 마련에 ..

피아노를 듣는 밤

피아노를 듣는 밤권영상   창밖에 쪼매만한 상현달이 떴다. 테두리 흔적만 남은 명주실 같이 가는 달이다. 시계를 보니 9시 무렵.나는 어린 상현달에 끌려 다락방에 올라가 창을 열었다.집이 동향이니 달이 보일 리 없다. 대신 건너편 산으로 부는 컴컴한 참나무 숲 바람 소리가가득 밀려온다. 숲 바람은 피아노 연주곡처럼 한 차례 소란스럽게 다가와서는 다시 잠잠해지고, 잠잠해지다가 다시 소란을 떤다.나는 휴대폰에서 쇼팽의 녹턴을 꺼냈다.참나무 초록물이 잔뜩 든 밤바람 소리를 배경으로 피아노 소곡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시작 버튼을 누르고 어두컴컴한 숲을 바라본다.음악을 열면 음악에 빠지기보다 오히려 긴 상념에 빠진다. 나이를 먹어 더욱 생각이 많다. 나의 상념은 음악을 겉돌게 한다. 구성이 복잡할수록 더 ..

젤로가 사라졌다(연재2)

요 이야기 동시 연재>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2)  나라는 세운 사람들  2. 온조 부러진 칼  저녁을 마쳤다.왕궁의 서편 하늘로 꽃빛 같은 노을이 뜬다.고구려를 탄탄한 기반 위에 올려 놓느라 동명성왕은 가족과 함께 노을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그건 소서노 왕비도, 소서노의 두 아들 비류와 온조 역시 그랬다.“부인의 힘이 아니었다면 우리 고구려가 이렇게 번듯해지지 못했을 것이오.”왕이 왕비의 손을 잡았다.왕의 손길이 따뜻했다.“과분한 칭찬이시옵니다.”왕비의 대답이 끝나자, “그리고!”왕이 말머리를 돌렸다.마주 앉은 비류와 온조를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내 아들들아! 너희 역시 나라를 굳건히 하는데 큰 힘을 보태주었구나.”그 말에 소서노 부인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내 아들들아..

카테고리 없음 2024.06.10

젤로가 사라졌다 (연재 1)

요 이야기 동시 연재>   젤로가 사라졌다 (연재 1)  젤로가 사라졌다.게임 중에 젤로가 컴 속으로 성큼 뛰어 들어갔다.그 후, 젤로의 바쁜 발걸음 소리가 컴 속에서 가끔 들려왔다.“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젤로 동생 달로가 울먹였다.젤로는 학교 공부보다 컴속 무궁무진한 세상을 탐험하고 싶어 했다.“나는 시간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초록 풍뎅이가 될 거야.”젤로는 평소 그런 말을 자주 했다.젤로의 아바타는 풍뎅이다. 초록 풍뎅이. 시간이 멈추지 않는 한 젤로는 컴 속 과거 현재 미래를 풍뎅이처럼 자유롭게 오갈 것이다.초록풍뎅이가 날아올랐다.과거로 날아간 초록 풍뎅이는 금와왕이 다스리는 동부여에 방금 도착했다.  나라를 세운 사람들   1. 주몽  우리는 고구려를 세우러 간다  주몽왕자는 대소왕자의 눈을..

카테고리 없음 2024.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