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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로가 사라졌다(연재 9)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다  5. 비형랑 귀신의 아들로 태어나다  복숭아꽃 피는 이슥한 봄밤,혼자 살고 있는 도화의 방문이 흔들렸다.켜 둔 촛불이 춤추듯 흔들리더니훅 꺼졌다.‘복사꽃 바람이 부는 모양이구나!’도화가 다시 불을 켜려는데 눈앞에 누군가 어른거리며 서 있었다.“아니! 당신은.”도화가 놀라 손으로 입을 가렸다.좀 어둡기는 했지만 도화는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았다.“돌아가신 지 2년이나 되는 분이 여긴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이까?”어른거리는 그는, 죽은 진지왕이었다.왕은 대답하지 않았다.왕은 그렇게 7일을 머물다가 홀연히 떠나갔다.그 후, 도화가 아들을 낳았다.그가 비형이다.비형은 반은 귀신이고, 반은 사람이다.  소문  진평왕이바람결에 들려오는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그 아이가 돌아가신 선왕의 아들이..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8)

(월요 이야기 동시 연재)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다  4. 명장 이사부  북을 쳐라  “돛을 올려라!”전함에 오른 이사부 장군이 전군에 명했다.세 척의 전함이 일시에 돛을 올렸다.“대왕마마의 명을 받아 우리는 우산국을 정벌하러 간다! 북을 쳐라!”장군이 출정 신호를 보냈다.둥, 둥, 둥, 둥 북소리가 동해 바다를 울렸다.드디어 함대가 깃발을 휘날리며 우산국을 향해 노를 저었다.지증왕 13년, 6월, 순풍이 부는 맑은 날이다. 동쪽 바다 끝 우산국은 신라에 무릎을 꿇어놓고도 약속을다 하지 않았다.“그들은 공물을 바치지 않은지 오래 되었소. 깊은 바다를 믿고 오만하여 신하 노릇을 아니 하는 것이오. 그러니 이사부 장군!”왕이 이사부 장군을 불렀다.“그대가 이번 기회에 항복을 받아오시오.”“그러하오이다. 마마..

까르찌나, 러시아 현대미술전

미하일 쿠가츠의                                                세르게이 볼코츠의   까르찌나, 러시아 현대미술전권영상  한전 갤러리에 들렀다.요 며칠 전에 본 러시아 미술전이 다시 보고 싶어서다, 처음 본 그림들이었지만 왠지 오래 입은 옷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같은 향수가 나를 이끌었다. 러시아 미술. 러시아 미술에 대해 나는 도통 아는 게 없다. 러시아에 미술이란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그쪽에 문외한이다. 내게 있어 러시아는 의식의 저쪽 동토에 어둡게 묻혀있는 나라다. 아무리 러시아 음악과 러시아 무용과 러시아 박물관과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만났다 해도 그건 또 그거일 뿐이다.  내가 러시아를 안 건 19살 무렵이다. 누나를 졸라 누나..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7)

이야기 바다에 빠지다  3. 머리에 댓잎을 꽂은 병사들  미추왕  “백성들을 먼저 지키시오.”267년 백제가 신라의 변방 봉산성을 쳐들어오자미추왕이 제일 먼저 한 말이다.이 소식을 들은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봉산 마을 어른이 소리쳤다.“이제는 그 왕을 우리가 지켜 드릴 때입니다!”산성 싸움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이 일어섰다.“싸우러 가자!”“신라를 지키러 가자!”변방 백성들은 활을 메고 봉산성을 향해 달려 나갔다.백제는 벌써 여러 차례 신라를 쳐들어왔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졌다.어질고 덕이 많으신 미추왕이 계시기 때문이다.왕은 나이 많은 분을 공경하였다.왕은 배고픈 이들을 자식처럼 돌보아주셨다.즉위한 지 11년 되는 해였다.나라 곳곳을 두루 돌아보신 뒤 왕은 신하들에게 명을 내렸다.“백성들이 힘들게 농사짓..

아내의 고집

아내의 고집권영상   장맛비가 열흘 동안 이어지고 있다.기상청은 장마답지 않은 이 장마 기간을 ‘한국형 우기’라고 불러야 한단다.며칠 전에 모종한 콩들이 장맛비에 웃자라 쓰러지고 있다.지난해는 서리태 콩 모종 쉰 포기를 모종가게에서 사다가 심었다. 푸른콩 씨는 늦게 얻어 늦는 대로 텃밭에 직파했다.요령이 생긴 올해는 아예 포트에 콩씨를 심어 손수 모종을 길렀다. 모종은 어느 작물이든 이쁘다. 자라기도 잘 자란다.   “푸른콩 씨도 심었지?”콩 모종을 들여다 보던 아내가 물었다.“한번 심어봤으면 되지 뭘 또 심어.”내 말에 아내가 벌컥 화를 냈다.제 손으로 밭 귀퉁이에 고집스레 모판을 만들더니 푸른콩 씨를 꺼내다 심었다. 열흘 만에 아내는 푸른콩 모종을 텃밭에 냈다.일찍 심은 콩은 못 건져도 늦게 심은 콩..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6)

이야기 바다에 빠지다  2. 연오와 세오  연오가 바위를 타고 가다  “해초 따러 갔다오리다!”연오가 부엌일을 하는 아내 세오에게 일렀다.“파도 조심해요.”세오의 말을 뒤로 하고 연오는 바구니를 끼고 집을 나섰다.여느 때보다 바다가 파랗고 잔잔하다.‘바다 너머 해 뜨는 곳엔 누가 살까.’오늘 따라 괜스런 생각을 하며 바닷가로 내려갔다.안 봐도 안다.어느 갯바위에 해초가 많은지.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해초를 따며 살았으니 그쯤이야 눈을 감고도 안다.연오는 마른 바위에 신을 벗어놓고, 해초가 많은 바위로 건너갔다.한참 해초 따는 일에 정신을 팔고 있을 때다.‘아니, 아니, 이게 어찌 된 거지?’올라앉은 바위가 어디론가 둥둥 떠가기 시작했다.잠깐이 아니었다.갈수록 속도가 붙었다.세오! 세오! 세오! 다급한 연..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5)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다  1.석탈해  아기가 배를 타고 오다  바람 부는 날,낯선 배 한 척이 아진포 앞바다로 밀려왔다.‘아니, 웬 밴고?’할머니 아진의선은 바닷길로 나가며 중얼거렸다.이상한 건 까치 떼가 배를 따라오며 우짖는다는 것이었다.옳거니! 배 안에는 사내 아기가 혼자 울고 있었다.할머니는 아기를 덥썩 안고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방에 뉘였다.“너는 누구뇨?”할머니가 아기에게 물었다.아기가 울음을 그치더니 대답했다.“나는 용성국의 왕자다. 어머니가 7년만에 아기를 낳았는데 그만 알을 낳았다. 나는 그 알에서 나왔다.”아기가 소년처럼 말했다.“왕자라면서 어쩐 일로 혼자 여기까지 왔느뇨?”“알에서 나온 자식이라 왕은 나를 불길하다며 내다버리라 명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를 배에 몰래 실어 보내며 가 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