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이야기 동시 연재)
젤로가 사라졌다(연재 13)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다
9.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엉덩이를 만져 보다
“대왕마마, 어전 회의에 나오소서.”
신하들은 꽝 닫힌 대전 문 앞에 모여와 어전회의 참석을 재촉했다.
오늘만도 벌써 세 번째다.
경문왕은 속 모르고 재촉하는 신하들 말이 싫어 귀를 틀어막았다.
“마마, 시급한 나랏일을 마냥 늦출 수는 없나이다.”
신하들은 또 닥달했다.
신하들의 청은 백번 맞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왕은 자신의 은밀한 사정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그대들끼리 하라지 않았소!”
왕은 짐짓 태연한 척 그들을 내쳤다.
극성스레 재촉하던 신하들도 끝내 돌아갔다.
자꾸 커져가는 두 귀가 왕을 괴롭혔다.
‘이건 너무도 망칙한 일이야!’
왕이 된 이후, 어찌된 일인지 두 귀가 커지더니 지금은 당나귀 귀만 해졌다.
하필 당나귀 귀라니!
왕은 귀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의심스레 자신의 입을 만져 보았다.
입도 당나귀 입처럼 뭉툭 튀어나와 있을 것 같았다.
의심스레 엉덩이를 만져 보았다.
당나귀 꼬리처럼 길다란 꼬리가 덜렁 달려 있을 것 같았다.
의심스레 일어나 두 발로 걸어 보았다.
당나귀처럼 네 발로 걸어갈 것 같았다.
“에흠!”
의심스레 헛기침을 해 봤다.
“푸르르르르.”
당나귀처럼 주둥이를 흔들며 헛기침을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멀쩡하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당나귀로 변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왕은 왕이 된 게 후회스러웠다.
복두장이가 흠칫 놀라다
참다 참다 못한 왕은
그날 밤, 대궐을 숨어다니는 오소리를 불렀다.
“너는 입이 무겁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재주를 가졌다지?”
“그러하옵니다. 마마.”
오소리가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
“입이 무겁다는 네 말을 진정 믿어도 되겠느냐?”
왕은 다짐을 받았다.
“믿으옵소서.”
“그렇다면 오 대감!”
왕이 오소리를 보고 갑자기 오 대감이라 불렀다.
“짐이 그대에게 부탁을 하나 할 테니, 충성을 다하라.“
“그리하겠나이다.”
오 대감이 머리를 조아렸다.
“내 긴히 필요해 그러니 이 밤, 홀로 궐을 나가 유명하다는 복두장이를 데려와 다오.”
오소리는 왕의 명을 받자, 그늘을 골라 딛으며 궐을 나갔다.
자정 무렵, 오대감은 복두장이를 앞세우고 대궐로 돌아왔다.
왕은 그에게 사례하고 복두장이와 단둘이 대전에 마주 앉았다.
“이 귀를 숨길 두건을 만들어 다오.”
왕은 귀가 보이지 않게 친친 감은 천을 풀어 보였다.
복두장이가 흠칫 놀랐다.
“복 대감!”
왕이 매서운 눈으로 복두장이를 불렀다.
“예. 마마.”
“그대에게 분명히 명하노니 이 일을 결단코 발설치 말라.”
복두장이 복 대감은 대감이란 벼슬의 무게에 눌려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네. 마마. 눈물로 맹서하겠나이다.”
“그대와 나만 아는 일이노니 명심하시오.”
“네 마마.”
“두건을 만드는데 사흘의 말미를 주리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왕은 복두장이가 지어준 두건으로
감쪽같이 당나귀 귀를 감추었다.
신하들은 물론 왕비와 아들들과 궁인들조차 그 사실을 몰랐다.
어느덧 세월이 흐르고 흘렀다.
이제는 왕도 궐 밖에 사는 가난한 복두장이를 까맣게 잊었다.
‘답답하구나.’
그러나 그 사이 하얗게 늙어버린 복두장이는 그 옛날의 비밀을 지키느라 병이 들었다.
바람이 조용한 날, 복두장이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죽기 전에 누군가에게 이 비밀을 말하고 싶다!’
복두장이는 지팡이를 찾아들고 집을 나섰다.
머릿속에 생각해 두었던 그곳을 향해 또각또각 걸어갔다.
도림사 대나무 숲속이었다.
사람 그림자라곤 없는 으슥한 대숲 안으로, 안으로 들어간 복두장이는
어느 쯤에서 걸음을 멈추고
손나팔을 했다.
그리고는 몸속 깊이 숨기고 살았던 비밀을 꺼내어 소리쳤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아아!”
그 소리에 하늘이 숨죽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아아!”
그 소리에 땅이 숨죽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아아.”
그 소리에 대숲이 숨죽였다.
틀어막고 있던 호리병의 마개가 뻥, 열려나듯 참았던 비밀이 터져 나왔다.
복두장이는 힘없이 돌아섰다.
어쩐 일인지 그 순간,
복두장이의 눈에 귀를 감추느라 끙끙 앓고 있을 왕이 떠올랐다.
‘얼마나 힘드실까.’
그 생각을 하며 복두장이는 아니 복대감은 천천히 대숲을 걸어나갔다.
그 후 바람이 불면
대숲에서 복두장이의 말소리가 들렸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아아아아아.”
대나무 숲을 베다
소문은 돌고 돌아 왕의 귀에 들어갔다.
왕의 귀가 다시 꿈틀거렸다.
이미 멈추어 버린 줄 알았던 왕의 귀가 다시 부쩍부쩍 크기 시작했다.
“도림사 대나무 숲을 모두 베어내시오.”
왕은 명을 내렸다.
대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산수유나무가 심어졌다.
산수유를 심으면 모든 게 없었던 일처럼 깨끗이 덮여질 것 같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바람 불면 산수유 숲에서 또다시 복두장이 목소리가 울려났다.
“임금님은 귀는 길다아아.”
그런 날이면 왕은 괴로웠다.
그날, 풍뎅이 한 마리가 왕의 곁으로 날아들었다.
“꼭 한 번 임금님의 귀를 보고 싶습니다.”
젤로가 인사를 하고, 낮은 소리로 청했다.
“그건 죽어도 안 될 일이다.”
“근데 귀는 왜 자꾸 커지는 거지요?”
“그것 역시 말할 수 없다.”
“혹시 들어서는 안 될 나쁜 비밀을 들으신 뒤부터 귀가 자라나는 건 아닌지요?”
“그렇다.”
왕이 선뜻 말했다.
“그렇다면 그 나쁜 비밀을 제게 말해 주실 수 없나요?”
젤로가 재촉했다.
“죽어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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