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이야기 동시 연재)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다
11. 선화공주와 서동
아버지가 용이었다
어둠이 수북수북 내리는 밤.
풀잎 오두막집 앞
연못물이 흔들리면서 그 속에서 용이 나왔다.
용은 몰래 풀잎 오두막집에 숨어 들어갔다.
그리고 새벽닭이 울 때쯤
오두막집에서 나와 연못물을 흔들며 조용히 못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
풀잎 오두막집에서 애기 울음소리가 났다.
사내아이였다.
아이는 이름도 없이 풀잎처럼 자랐다.
아버지가 누구냐, 물으면 아버지가 용이라 했다.
이름도 없는 풀잎 오두막집 아이는
어머니랑 둘이 뒷산에서 마를 캐어 먹고 살았다.
마를 캐어 먹고 산대서 사람들은 풀잎 오두막집 아이를 맛둥방, 서동이라 불렀다.
소문이 국경을 넘어오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님이 그리 예쁘다네.”
“예쁘기만 할까. 마음도 곱다지 뭔가.”
“마음만 고울까. 생각도 강물처럼 깊다지 뭔가.”
백제의 변두리 마을 장터에 신라 선화공주 소문이 자자하게 돌았다.
그 소문에 풀잎 오두막집 서동의 귀도 번쩍 열렸다.
“공주님을 보러 가자!”
서동이 벌떡 일어섰다.
“아니, 공주님을 신부로 맞이하자!”
서동의 마음이 쿵쾅쿵쾅 뛰었다.
“가려면 지금 가자!”
서동은 장터에 팔러온 마를 짊어지고
그 길로 먼 신라를 향해 길을 떠났다.
서동이 국경을 넘다
걸어 걸어 국경을 껑충 넘었다.
신라 궁궐이 바라보이는 골목에서 길을 멈추었다.
서동은 생각이 있었다.
짊어지고 온 짐을 풀고 마를 꺼내어 구웠다.
마 굽는 고소한 냄새가 개울물처럼 골목길을 타고 흘러갔다.
아이들이 침을 꼴깍거리며 물방개처럼 모여들었다.
서동은 구운 마를 나누어 주었다.
“넘 고소해요”
“벌꿀밤처럼 고소해요.”
“꿀맛 꿀맛 선화공주님도 반하시겠어요.”
아이들이 한마디씩 했다.
구운 마 고소한 소문은 궁궐 담장을 넘어 궐 안으로 들어갔다.
겨울이 깊어져 가는 어느 날, 선화공주가 골목길 서동을 찾아왔다.
서동이 건넨 뽀얗게 구운 마를 먹고 선화공주는 고 예쁜 입으로 말했다.
“내 마음을 빼앗는구나.”
이렇게 하여 선화공주는 서동과 만났다.
그 밤, 서동은 선화공주의 고 예쁜 말과 얼굴을 그리느라 잠 한숨 못 잤다.
그 밤, 선화공주도 서동의 고운 눈빛을 잊지 못해 잠 한숨 못 잤다.
다음 날, 까치가 우는 한낮에 두 사람은 만났다.
첫눈 내리는 저녁에 또 만났다.
바람 씽씽 부는 밤에
남몰래 담장 그늘을 골라 딛으며 또 만났다.
그렇게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아직도 두 사람은 달 없는 밤을 골라 몰래 몰래 만났다.
그러나 몰래란 없는 법.
궐 안이든 궐 밖이든 아버지 진평왕만 빼고 알 사람은 다 알았다.
어디 가서라도 잘 살아라
얼레리꼴레리 얼레리꼴레리
선화공주는 밤에 몰래
서동 서방을 얼레리꼴레리
품에 안고 논대요.
“저 해괴한 노래, 공주도 알고 있느냐?“
진평왕은 딸 선화공주에게
궐 밖 골목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노랫소리를 가리켰다.
“알고 있나이다.”
“저것이 사실이라면 더 이상 아비를 속이지 말고 오늘 안으로 궁을 떠나라.”
목소리는 낮았지만 왕은 분을 참지 못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멀리멀리.”
왕은 얼음장 같은 말을 남기고 공주를 물리쳤다.
해 지기 전에 왕비는 공주를 데리고 나와
성문 밖에서 작별했다.
“어디 가더라도 잘 살아라. 행복해라.”
“네. 어마마마.”
이윽고 성문이 드르륵 닫혔다.
서동, 결혼하다
쫓겨나온 공주는 갈 길이 막막했다.
해는 졌지요, 날은 어둡지요. 길은 낯설지요. 다리는 아프지요.
갈 길을 몰라 멈추어 섰을 때다.
선화공주 앞에 말 탄 사내가 불쑥 나타났다.
“공주, 나 서동이요. 이때를 기다려 말을 준비했다오. 함께 나의 고향으로 갑시다.”
두 그림자는 말을 타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밤이 가고 새벽별마저 흐릿해질 무렵
풀잎 오두막집 앞에 다다랐다.
“나의 아들이냐?”
사립문 앞에 오뚝 선 그림자가 말했다.
“예. 어머니! 선화공주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서동과 선화공주는 말에서 내려 어머니 발 앞에 절을 올렸다.
“결혼할 거예요. 어머니.”
세 그림자는 어둑한 방안으로 찾아들었다.
서동의 어머니가 등에 불을 켰다.
늠름해진 아들과 그 곁에 예쁜 선화공주가 불빛에 환히 드러났다.
선화공주는 어머니가 손에 들려주신 것을 등불 앞에 내놓았다.
“이 금덩이면 평생을 잘 살 수 있다오.”
“아니, 이런 걸로 평생을?”
서동이 뜨악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요.”
“이런 거라면 우리 뒷산에 수없이 많다오.”
자고 일어나 뒷산에 올라서 보니 정말이었다.
금덩이가 돌멩이들처럼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젤로가 서동을 만나다
금덩이를 자루에 담아 어깨에 메고 내려오는
서동이 앞에 젤로의 아바타 초록 풍뎅이가 날아왔다.
초록 풍뎅이가 노래를 불렀다.
얼레리꼴레리 얼레리꼴레리
선화공주는 밤에 몰래
서동 서방을 얼레리꼴레리
품에 안고 논대요.
“이 노래를 아시나요?”
젤로가 서동이에게 물었다.
“알다마다.”
서동이 메고 있던 금덩이 자루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나는 미래의 나라 서울에서 왔다오.”
젤로의 말에 서동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서울이라니! 처음 듣는 나라다. 근데 여기까지는 왜 왔는가.”
“궁금한 것이 있다.”
“무엇인가.”
“이 노래는 다들 서동 당신이 지어 아이들에게 가르친 걸로 알고 있다. 사실인가?”
“아니다. 나는 선화공주를 음탕한 여인으로 꾸며낼 용기가 없다. 나는 진정으로 공주를 사랑했을 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당신은 나중에 백제의 무왕이 된다. 그렇게 될 인물이 공주를 꾀려고 거짓노래로 얕은 수를 썼을 거라 믿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이 노래를 지은 사람은 누굴까.”
“우리의 사랑을 한갓 재미로 몰아간 사람들이 아닐까.”
“그렇기도 하겠다.”
젤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것 이상 더는 모르오. 미래의 나라로 잘 가시오.”
서동이 내려놓은 금덩이 자루를 다시 어깨에 메고 일어섰다.
“두 분 행복하게 잘 살아요.”
젤로가 막 진달래꽃이 피기 시작하는 금마의 산골짜기를 날아올랐다.
훗날, 서동은 금덩이로 진평왕의 사위가 되었고,
제30대 백제 무왕이 되었다.
젤로가 컴 밖으로 뛰어나오다
달로는 젤로 형을 찾기 위해 매일 컴 속을 뒤졌다.
가끔 컴에서 형의 아바타 초록 풍뎅이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엄마, 여기 형이 있어.”
그랬지만 엄마는 달로 말을 믿지 않았다.
젤로가 컴 속으로 뛰어 들어간 걸 믿지 못하는 엄마가 컴 속에서 들리는
초록 풍뎅이 소리가 형이라는 걸 인정할 리 없다.
젤로 형이 사라진 지 오늘로 꼭 3일이다.
방학이기 망정이지 그렇잖았다면 엄마는 형이 다니는 학교에서 걸려 오는 전
화로 매일 고통받았을 거다.
오늘도 엄마는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를 위해 시골로 내려가셨다.
여름비 내리는 점심 무렵,
컴 속 정보를 서핑하고 있을 때다.
달로는 골짜기처럼 깊고 으슥한 백제 무왕의 금마 계곡을 날고 있는
초록 풍뎅이와 탁 마주쳤다.
“형!”
젤로 형을 불렀다.
그 순간, 형은 마치 무중력의 세계에서 벗어나듯 컴 밖으로 뛰쳐나왔다.
둘은 서로 얼싸안았다.
형은 그동안 멀리 동부여에서 고구려와 백제 신라까지 무려
2천여 년의 시간 속을 아무 걸림 없이 여행했다.
그런데도 젤로 형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라곤 없었다.
오히려 여행자처럼 훨씬 더 생각이 깊어 보였다.
“체험해 보고 싶은 역사의 골짜기들이 너무 많아.”
젤로 형은 잠자리에 들기 전 달로에게 그 말을 했다.
젤로 형의 컴 속 여행이 이것으로 그칠 것 같지 않았다.
“또 떠날 거야?”
달로가 물었다.
“응. 이번엔 방학이 끝날 때쯤 돌아올 거야.”
그 말을 끝으로 형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 잠이 먼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될 줄은 젤로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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