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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로가 사라졌다(연재 11)

권영상 2024. 8. 12. 18:36

(월요 이야기 동시 연재)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다

 

7. 보희의 오줌

 

보희가 꿈을 팔다

 

 

“내 꿈 얘기 좀 들어볼래?”

보희가 동생 문희 방으로 살그머니 들어섰다.

바느질을 마치고, 반짇고리 실패에 바늘을 꽂을 때였다.

“어떤 꿈이길래?”

문희는 일어나 뜰 안으로 난 창문을 열었다.

“서악에 올라 오줌을 눈 꿈이야.”

문희와 나란히 서서 창밖을 내다보며 보희가 꿈 이야기를 시작했다.

“언니가 오줌을?”

오줌이란 말에 문희가 싱긋 웃었다.

“근데 밤중에 왜 서악까지 올라가 오줌을 눈 거야?”

“그러니까 꿈이지.”

“그래서 어떻게 됐어? 언니.”

창밖 함박꽃 봉오리도 오줌 꿈 이야기에 솔깃 부풀어 올랐다.

“얼마나 많이 누었던지 오줌이 흘러내려 서라벌이 찰랑찰랑 넘쳤어.”

언니도 우스운지 웃었다.

“에이, 망측해라. 근데 서라벌이 언니 오줌으로 찰랑찰랑?”

“응. 찰랑찰랑.”

함박꽃도 우스웠던지 결국 자줏빛 꽃망울을 활짝 열어젖혔다.

언니의 오줌이 세상을 다스리듯 서라벌을 가득 채우다니!

“그래서? 그래서 언니.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이것으로 끝이야!”

“끝?”

“끝.”

꿈 얘기를 끝내고 방을 나서는 언니 옷자락을 문희가 덥석 잡았다.

“언니. 그 꿈, 내게 팔어.”

“파라고? 망측한 오줌 꿈을?”

“응. 내가 아끼는 비단치마 줄게.”

“너무 비싸게 사는 거 아냐?”

“아냐.”

그날, 문희는 꿈 값으로 비단치마를 주고 언니 보희의 오줌 꿈을 샀다.

 

 

옷고름을 밟아 떼다

 

 

그 며칠 뒤,

축국을 하러 간다고 나간 유신이 때 이르게 집으로 돌아왔다.

유신의 뒤에 춘추가 두 손으로 웃옷을 여미고 서 있었다.

“어서 오세요. 공자님.”

보희가 마루에 나와 춘추에게 인사를 드렸다.

“이 오빠가 실수로 귀하신 유신공의 옷고름을 밟아 떼었다. 보희가 모시고 들어가 잘 달아드리렴.”

유신은 일이 있다며 집을 나갔고,

보희는 춘추를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잠깐 기다려 주셔요.”

보희가 방을 나왔다.

문희의 방에서 보았던 반짇고리가 떠올랐다.

반짇고리를 찾아들고 문희의 방에서 나올 때다.

“언니!”

문희가 보희 앞을 가로막았다.

“내게 판 오줌 꿈 벌써 잊지 않았겠지?”

그 말에 보희가 흠칫 놀라며 말없이 반짇고리를 문희에게 넘겼다.

그날, 문희는 보희 방에 들어가 춘추의 떨어진 옷고름을 달아주었고

그만 그 날로 춘추의 아기를

임신했다.

 

 

처녀가 임신을 하다니!

 

 

선덕여왕이 마차를 타고 남산으로 행차할 때였다.

유신의 집에서 불길에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선덕여왕의 눈길이 그쪽을 향했고, 뒷자리에 앉아 있던 춘추의 가슴이

당나귀처럼 뛰었다.

춘추는 올게 왔다는 걸 직감했다.

“행차를 멈추거라!”

드디어 여왕의 행차가 멈추었다.

“유신공의 집인 듯한데, 웬 일인지 알아보고 오너라!”

여왕이 춘추를 돌아다보았다.

춘추가 마차에서 뛰어 내려 유신의 집으로 내달렸다.

유신의 뜰 마당에 들어서기 무섭게 춘추는 얼음기둥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뜰 마당 장작더미엔 뜨거운 불과 연기가 활활 솟구쳐 오르고,

그 앞에 문희가 꿇어앉아 있었다.

“춘추공은 이 일을 아시는가?”

유신이 헐레벌떡 들어선 춘추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문희가 처녀의 몸으로 임신을 했다네! 춘추공이라면 살려둘 수 있겠는가?”

유신의 얼굴이 불길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두 말 할 것 없네. 우리 가야국의 법대로 문희는 화형을 받아 인생을 마칠 걸세!”

춘추의 언 몸이 녹아내리듯 흔들렸다.

“이보게 유신공! 문희 아우를 살려주시게. 내가 죄인일세.”

“그가 누구라도 용서할 수 없다네.”

유신이 버티었다.

춘추가 다시 달음질쳐 선덕여왕에게 이 사실을 고했다.

“내가 용서하라, 하더라고 이르게. 그리고.”

유신의 집으로 되집어 달려가는 춘추의 등뒤로 여왕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문희를 부인으로 삼으시게.”

춘추는 달려가며 눈물을 삼켰다.

“자비로우신 나의 이모님!”

여왕은 춘추의 이모였다.

이윽고 불이 꺼지고, 절정으로 치닫던 연극처럼 사건은 끝났다.

서라벌에 차고 넘치던 오줌처럼

유신의 여동생 문희는 춘추 무열왕의 아내 문명왕후가 되었고,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어머니가 되었다.

 

 

마당에 불길은 꺼지고

 

 

“김유신 장군님!”

젤로가 뜰 마당의 불을 끄고

돌아서는 김유신을 찾았다.

“궁금한 게 있다오.”

“어린 소년이여! 무엇이 궁금한가?”

장군이 옷에 떨어진 재티를 활활 털었다.

”여왕이 행차하는 시간은 미리 아셨나요?”

“우연히 그렇게 된 것 뿐이다.”

“삼국유사에 담긴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꼭 알고 싶었던 게 있지요. 춘추의 옷고름을 첫째인 보희가 아니고 둘째인 문희가 단 이유는 뭔가요? 꿈을 샀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말고 솔직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 데 대답해 주실 수 있나요?”

젤로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렇게 알고 싶다니 말해 주겠다. 보희는 가야왕손으로서의 자존심이 누구보다 강했다. 그런 보희가 춘추의 두 번째 부인이 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거다.”

“결국 춘추의 세 번째 부인으로 들어가지 않았나요?”

젤로가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연이어 했다.

“그땐 이 오빠의 힘이 강하게 작용했다.”

“그럼, 문희는 어떤 누이동생이었나요?”

“문희는 명석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예민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과거에 사로잡혀 사는 언니와 달리 지금의 신라를 읽는 총명함이 있었다.”

“저도 인정합니다. 지금 저의 눈으로 보면 여동생 문희가 춘추공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신라의 삼국통일은 어려웠을 것 같아요. 그러나 이 모두 김유신 장군의 지략 때문이 아니었던가요?”

"그건 아직 나는 모를 일이다. 어린 소년이여! 그대는 누구인가?"
장군이 다정하게 물었다.

“2024년 서울에서 온 젤로입니다.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