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 잎싹은 예쁘다
권영상
팥을 심었다.
태어나 첫 경험이다.
서리태 콩은 지난해 가꾸어봤다.
밭에 콩씨를 직파한 게 아니라 모종가게에서 파는 콩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장마에 요앞 다리가 끊겼을 때다.
쉰 포기. 7월 8일에 심은 걸로 지난해 달력에 적혀 있다.
텃밭에 빈 땅이 있는 걸 알고 아내가 연일 팥! 팥! 팥 타령이다.
5월에 도라지 씨앗을 뿌렸는데 하나도 나오지 않아 묵히고 있는 손바닥만 한 빈 땅이 있다. 아내가 그걸 본 거다. 거기다가 심으면 딱이란다.
나도 그 생각은 하고 있었다.
대농을 하시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팥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다.
아버지가 안 계시니 대신 인터넷에 물었다.
중부지방은 6월 중순이 적기란다.
때가 마침맞다.
호미로 땅을 헤친 자리에 팥 세 알씩 넣고 묻었다.
조루에 물을 담아 며칠 물을 주었다.
5일 만에 싹이 나왔다.
예뻤다. 예뻐도 그렇게 예쁠 수 없다.
콩은 떡잎이 먼저 나오고 나중에 속잎이 핀다. 그런데 팥은 다르다. 떡잎이 없고 바로 잎싹이 마주 하여 나온다. 잎싹 치고 너무 깜찍하다. 꼭 트럼프의 스페이드를 빼닮았다. 아니 팥 잎싹을 보고 스페이드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마주 하는 작고 앙증맞은 초록 스페이드.
잎싹은 점점 자라 지금 1센트 은화만큼 커졌다.
발아한 지 오늘이 8일째다.
멀리 속초에 사시는 둘째 누나에게 이 이야기를 전화로 드렸다.
팥은 꼬투리가 통통해질 때 자꾸 따먹어야 자꾸 자꾸 열린다고 했다.
이 다음에 크면 한 옹큼씩 밥에 안쳐 먹을 생각이다.
아내도 고 팍신하게 익은 팥맛을 한 번 보려고 팥, 팥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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