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아침에 물을 주다

권영상 2024. 6. 15. 18:02

 

 

 

아침에 물을 주다

권영상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곧장 텃밭으로 나간다.

흙과 직면하여 사는 게 오랜 꿈이었다.

가뭄에 텃밭에 나가면 할 일이 있다. 작물에 물을 주는 일이다.

밭에 토마토 20포기가 크고 있다.

안성에 내려온 지 11년째인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토마토를 가꾸었다. 토마토에 대한 아련한 십 대의 기억이 있다. 어머니 병환 때문에 아버지는 돈이 될 만한, 당시의 특용작물인 토마토 농사를 지으셨다. 나를 앞세워 토마토 모종을 밭에 내고, 나를 앞세워 토마토가 익으면 읍내 가게에 내다팔던, 좀은 쓸쓸했던 과거가 이 나이 먹도록 내 몸에 상처처럼 남아있다.

 

 

토마토를 사주는 가게가 없으면 손수레를 끌고 10리길을 그냥 돌아왔다. 그때 아버지는 마른기침을 얼마나 하시던지. 토마토가 병원비 마련에 큰 도움이 못 됐어도 나는 그후 토마토 재배법을 확실히 익혔다. 토마토 곁순을 딸 때 손끝에서 나던 아릿한 풋내엔 지금도 어머니의 오랜 병고가 묻어있다.

어머니 병원비를 대던 큰 효자는 토마토 보다는 감자였지, 싶다.

감자 스무 가마니를 다 팔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우시장 곁에 있는 국밥집으로 가셨다. 국밥을 한 그릇 먹고 돌아올 때 아버지는 고민이 있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농사일을 돕는 막내인 나를 진학시킬 것인지, 병원에 장기 투병 중이신 어머니를 살리실 것인지.

 

 

“내년에도 감자가 잘 되면......”

아버지는 감자에 희망을 거셨다.

그러나 나는 그로부터 2년 동안 진학을 못 했고, 어머니는 그로부터 15년을 꼼짝도 못하고 병석에 누워계셨다.

‘내년에도 감자가 잘 되면,’ 하시던 아버지의 희망을 떠올리며 해마다 텃밭에 감자를 심는다. 씨감자는 아버지와 나의 고충을 잘 아시는, 이제는 돌아가신 작은형수님이 강릉에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보내주셨다. 가급적 고향의 근원이 닿아있는 걸로 감자를 가꾸고 싶었다. 과거 소년시절의 쓸쓸한 기억을 놓치고 싶지 않는 애증도 있었다.

 

 

감자씨 눈을 따고, 봄눈을 맞으며 감자씨를 심고, 감자가 크는 걸 아버지처럼 물끄러미 바라보고, 허리를 구부려 감자를 캐고, 어슴푸레한 등불 아래 모여앉아 감자를 먹는 일.

감자를 캔 자리는 퇴비를 넣고 다시 대파 모종을 낸다. 지금 모판엔 지난 4월에 뿌린 파씨가 한창 크고 있다. 토마토에도 물을 주어야 하지만 모판에서 자라고 있는 파 모종도 흠뻑 물을 주어야 한다.

 

 

올봄엔 마당 잔디를 일부 치우고 그 자리에 강낭콩을 심었다.

생땅이라 비가 안 오면 밭이 분가루처럼 마른다. 그걸 알고부터 아침저녁으로 물 조루를 들고 조금씩 물을 나누어 준다. 한 열흘 물을 줘 봤는데 조금씩이라도 물맛을 본 강낭콩이 확연히 다르게 큰다. 나중에 장마가 지면 너무 장해 쓰러질 걸 알면서도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텃밭에 나와 물을 준다.

강낭콩에 물을 주고 강낭콩 잎을 들추어 본다. 꼬투리들이 빼곡하게 크고 있다. 뿌듯하다.

 

 

오늘은 머뭇거리던 백일홍이 꽃 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며칠 전부터 꽃양귀비가 고추밭가에 피고, 상추밭에 당귀꽃이 하얗게 핀다.

조루에 물을 채워 들고 가 아침밥을 먹이듯 물을 준다. 마음이 흡족해진다.

이것이 땅과 직면해 살고 싶었던 오랜 나의 꿈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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