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해목
권영상
산속 샘터에서 10분 남짓 걸어 들어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그 갈림길에 이르기 바로 전이다.
버팀목에 의지한 채 산비탈에 서 있는 소나무를 바라본다. 15년생쯤 되는 나무다.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다. 내가 말하는 ‘아무 이상’이란 소나무가 시든다거나 살 가망이 없음을 뜻한다.
그 엄혹한 날로부터 벌써 달포가 지났다.
지금도 그때 일이 잊히지 않는다.
지난 2월 22일다. 그날 서울엔 폭설이 내렸다. 폭설 전부터 오랜 시간 찬비가 내렸고, 비는 다시 진눈깨비로 바뀌었다. 밤이 되면서 진눈깨비는 다시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자고 일어나 창문을 열면서 나를 탄성을 질렀다.
“세상이 설국으로 변했구나!”
간단한 요기를 마치고 산에 올랐다. 산 역시 어마어마한 눈에 묻혀 있었다. 진눈깨비 끝에 내린 함박눈으로 치렁치렁 늘어진 나무숲은 진풍경이었다.
나는 무릎까지 차이는 그 눈을 밟으며 홀리듯 산을 올랐다.
설해목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숲 안쪽보다 바깥쪽 소나무와 잣나무들 피해가 컸다. 뿌리째 뽑혀 쓰러진 나무며, 눈 무게에 중둥이가 꺾인 나무가 눈에 띄었고, 부러진 새파란 잣나무 가지들 모습이 눈 풍경과 달리 좀은 참혹했다.
비에 땅이 물러졌고, 진눈깨비에 나무가 홈빡 젖었고, 그 위에 함박눈이 내렸으니, 나무들에게 그 밤은 어쩌면 최악의 날이었을지 모른다.
그다음 날도 나는 산의 일이 궁금해 다시 산을 찾았다.
찔레 덩굴이 있는 그 갈림길 바로 직전이다.
길에서 조금 떨어진 산비탈에 60대쯤 되는 분이 홀로 끙끙대고 있었다. 눈 무게에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소나무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그분은 쓰러진 나무를 어깨로 반쯤 일으켜 세우고 거기 받침목을 세웠다. 그리고는 나무와 나무 뒤쪽에 선 큰 나무에 로프를 걸고 와이어 조절기로 나무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눈더미 속에서 하는 그 일은 쉬울 리 없었다. 그는 그 일을 위해 쓰러진 나무와 큰 나무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갔고, 와이어 조절기로 로프를 당기는 일 역시 몇 번이나 반복했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나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더니 씩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나는 가던 걸음을 계속했고, 늘 내가 가던 코스로 산을 오르고 내려왔을 때 그 소나무는 여러 개의 버팀목에 둘러싸인 채 본디 상태로 우뚝 서 있었다.
나는 한참 그분이 세워놓은 소나무와 그러느라 애쓴 눈 위의 발자국들을 바라봤다.
그분은 어디로 갔을까. 이 일을 마치고 그냥 산을 내려갔을까. 아니면 또 다른 쓰러진 나무를 찾아 산 위로 올라갔을까.
눈 온 뒷날, 설해목을 염려하여 로프와 공구를 짊어지고 산을 찾아온 그분은 어떤 분일까. 폭설을 바라보며 산속 설해목을 걱정한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성자다웠다.
산에도 겨울이 가고 이미 진한 봄이 들어왔다. 나는 그분이 살려놓은 소나무 둘레를 꾹꾹 밟아준다. 뿌리를 깊이 내려 또다시 찾아올 겨울엔 쓰러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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