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나를 만나러 가는 길

권영상 2024. 3. 22. 12:31

 

나를 만나러 가는 길

권영상

 

 

 

가끔, 또는 종종 동네 산에 오른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집을 떠나 온전히 홀로 있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가 늘 오르는 산은 말이 동네 산이지 큰 산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다 지니고 있다. 절벽이 있고, 골짝이 있고, 비 내리면 작지만 폭포가 생겨나고, 너무 으슥해 약간의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곳도 있다. 물론 하늘을 가리는 나무숲이 있고 가끔 고라니도 만난다.

 

 

그중에서도 으슥한 숲으로 길게 난 평탄한 오솔길이 좋다. 그곳에 들어설 때마다 떠오르는 곳이 있다. 수렴동 계곡을 따라가는 긴 산길이다. 수렴동 계곡은 백담사에서 봉정암으로 가는 계곡이다. 거기도 처음엔 울창한 숲속을 향하여 난 길고 평탄한 오솔길이 있다. 그 길에 들어서면 내가 나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외로워서 못 간다.

‘너를 만나러 여기까지 왔다.’

나는 동네 산 호젓한 오솔길에 들어서면 내게 그 말을 한다.

 

 

어딘가에 깃들어 있던 내 마음속 내가 슬며시 나타난다. 그는 까마득히 잊고 살던 일을 일깨워 주거나 내 말실수를 집어내 준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을 가끔 조언해 주기도 한다. 나는 그와 집에서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하며 그 길을 간다.

이 길은 내 마음의 수렴동 계곡이다. 이 길에 들어서면 일부러 느릿하게 걷는다. 잠시 멈추어 내 마음이 귀띔해 주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그와 나눈 대화로부터 얻는 게 많다. 그리고 그것들을 대체로 실행하려고 한다.

‘수렴동 계곡’을 걷고 집에 돌아오면 나는 먼 설악을 다녀온 기분이다.

 

 

“우면산에 설악이 있거든.”
근래 들어 설악을 못 가는 이유를 나는 친구들에게 그렇게 말한다.

인디언 부족인 수우족 어느 할머니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처녀 시절,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까지 걸어 나갔다. 거기에서 그녀는 살아오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강을 만났고, 그 강가에서 천막을 치고 사는 인디언 남자를 만났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마을 어른들에게 자신이 보고 온 강이며 천막을 치고 사는 인디언 남자에 대해 자랑하듯 이야기했다.

“우리가 사는 이 근방엔 그런 강이 없다. 물론 홀로 천막을 치고 사는 인디언도 없고.”

마을 어른들은 그녀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음날, 그녀는 다시 그곳을 찾아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강을 만났고, 천막을 치고 사는 인디언 남자도 만났다. 그녀는 그에게 마을 어른들이 한 말 건네자, 그가 말했다.

 

 

“어른들의 말이 옳다. 그대가 보고 있는 이 강은 그대 마음속의 강이며 인디언 남자인 나는 바로 그대 마음에 살고 있는 그대 자신이다.”

마음속 비밀은 혼자 간직할수록 신비함이 커짐으로 그걸 지켜주기 위해 마을 어른들은 그녀의 말을 밀 막았던 거였다.

 

 

그가 누구든 그의 마음엔 강이 흐르고, 대화를 나누고 싶은 인디언 남자가 있다. 나는 내 마음의 강을 현실적으로 가까운 동네 산속에 두고 있는 셈이다. 날마다 이 강가에 나와 나를 만나고 나와 이야기하고 돌아간다. 그런 날은 내 마음이 갑갑함에서 풀려난다.

나는 산 숲 호젓한 길이 좋다. 넓은 들판을 홀로 걸어가는 호젓한 들길도 좋다.

 

교차로신문 2024년 3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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