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아내가 말했다
권영상
“오늘 어디 좀 나갈 데 없어?”
아침에 아내가 말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얼른 알아차렸다.
“알았어.”
식사를 마치고 어디 마땅히 갈 데도 없으면서 길을 나섰다.
캔버스를 세워놓고 붓 한 번 잡지 못하는 아내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집에 누가 있으면 마음이 열리지 않아 불편할 때가 있다. 그게 부부라거나 자식이어도 그렇다.
풍부한 자유를 받아들고 쫓겨나듯 집을 나서고 보니 막막했다.
전철에 올랐다. 그제야 갈 곳이 떠올랐다. 종묘다. 며칠 전, 서순라길 모임을 한 적이 있었다. 종묘 담장을 끼고 순라꾼들이 다니던 그 길을 걸어 북촌까지 갔었다. 그때 종묘 담장 너머로 보이던 늙은 갈참나무 숲이 궁금했다. 왜 이씨 종묘에 오얏나무가 아니고 갈참나무일까.
종로 3가역에서 내려 초여름 햇빛 아래로 종묘에 들어섰다. 재궁쯤에서 마침 종묘 해설사를 따르는 일행을 만났다. 모처럼 그들을 따라 정전과 영녕전 설명을 듣기로 했다. 나는 도중에 종묘 뜰이 왜 갈참나무 숲일까요? 하고 물었지만 해설사 분은 거거까지 준비가 안 된 모양이었다.
갈참나무에 수없이 열리는 도토리처럼 후손과 종묘사직이 번창하길 바라서가 아닐까.
종묘를 걸어나오며 그 생각을 했다.
이제 나는 영화 한편으로 쉽게 시간을 때워 보려고 세운상가를 건너 대한극장을 찾아 들어갔다. 그러나 내가 볼만한 영화들이 아니었다.
이른 점심을 먹고 집으로 가는 3호선에 올랐다. 아내에게 핀잔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집으로 들어가는 게 편할 것 같았다.
전철을 타고 집 근처 전철역에 다다를 쯤이다.
불현 ‘에드바르 뭉크 전’이 떠올랐다. 아니, 왜 이제야 뭉크가 떠올랐을까.
나는 전철에서 내려 예술의전당을 향했다.
거기 가면 오늘 오후는 온전히 내가 바라던 시간으로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행복해진 나는 깊 옆 카페에 들러 카페라테 한 잔을 시켜 놓고 휴대폰으로 화가 뭉크를 검색했다.
‘나는 더는 남자가 책을 읽고 여자가 뜨개질하는 장면을 그리지 않을 것이다. 숨쉬고, 느끼고, 고통받고, 사랑하는 살아있는 인간을 그릴 것이다.’
그는 살면서 겪은 생에의 불안, 죽음, 절망, 사랑과 이별의 악몽 같은 실존적 고뇌를 그려낸 표현주의 작가다. 그런 그의 작품들은 모두 그의 너무도 불행한 가족의 운명에서 비롯되었다.
관람객은 많지 않았지만 가이드 라인 벨트가 조밀하게 쳐져 있었다.
전시장엔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마음을 움직인 작품 앞에서 서성이는 남녀들이 많았다. 그들의 시선은 대체로 진지했고, 작품에서 끝없는 연민을 느끼는 듯 했다. 나 역시 그랬다. 동시대 사람들과 전시장이라는 같은 공간 안에서 같이 호흡하고, 같은 분위기에 빠지는 이 연대감이야말로 한층 나를 짜릿하게 했다.
감동을 주는 그림엔 대개 쭈욱 그래온 관습적 인식을 부정하려는 욕망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만신창이가 된 개인의 아픈 상처가 있다. 반 고흐가 그렇듯 뭉크의 작품이 특히 그렇다. 작품마다 ‘절규’와 같은 생의 우울함이 배어있다.
해가 질 무렵에야 나는 뭉크로부터 돌아섰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시기간 9월 19일까지. 관람 시간은 10시부터 19시.>
오늘 하루 내가 머물 시간이 여기 있었던 거다.
여보, 나 왔어!
나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캔버스 앞에 앉은 아내가 ‘혼자 밖에 나가 노니 좋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