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쿠가츠의 <먼 길>
세르게이 볼코츠의 <흰까마귀>
까르찌나, 러시아 현대미술전
권영상
한전 갤러리에 들렀다.
요 며칠 전에 본 러시아 미술전이 다시 보고 싶어서다, 처음 본 그림들이었지만 왠지 오래 입은 옷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같은 향수가 나를 이끌었다.
러시아 미술.
러시아 미술에 대해 나는 도통 아는 게 없다. 러시아에 미술이란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그쪽에 문외한이다. 내게 있어 러시아는 의식의 저쪽 동토에 어둡게 묻혀있는 나라다. 아무리 러시아 음악과 러시아 무용과 러시아 박물관과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만났다 해도 그건 또 그거일 뿐이다.
내가 러시아를 안 건 19살 무렵이다. 누나를 졸라 누나가 탄 곗돈으로 10권짜리 러시아 문학전집을 월부로 사서 읽은 게 전부다. 낡은 외투, 보드카에 취해 있는 하층민들, 14관등 하급 서기, 욕설이 난무하는 시베리아 열차, 가난한 농노들, 추운 눈벌판, 페테르부르크, 죽음과 지루한 소설의 서사, 그런 게 다다.
근데 갤러리 까르찌나가 펼쳐놓은 러시아 그림엔 그런 어두움이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사실주의 러시아 현대미술가들. 미하일 쿠가츠, 블라디미르 볼코프, 올가 블가코바, 알렉산드르 시트니코프….
흰 까마귀를 타고 어딘가로 막 날아갈 것 같은 세르게이 볼코프의 동화 같은 ‘흰까마귀’, 장난감 버스를 껴안고 시골을 찾아가는 신나는 ‘방물장수’, 마치 우주나무 같은 ‘나무-아침’ ‘나무-점심’, ‘나무-저녁’들. 볼셰비키 혁명과 스탈린과 레닌을 거치면서 살아남은 러시아 사람들의 가느다란 희망의 빛이 볼코프 그림의 여기저기에 어른거렸다.
대체로 조용하고 평범한 일상, 편안하고 부드러운 색조, 친근하면서도 순수해 보이는 인물들, 사랑과 술과 다정한 가족들, 그림 속 인물들은 대체로 곧 출발해야 할 먼 길을 앞에 두고 있거나, 대체로 먼 곳에 시선을 두고 있다.
다른 이들의 그림 역시 그러했다.
물론 소설의 시점과 그림의 시점 간엔 오랜 간극이 있기는 하다.
어떻든 까르지나에서 만난 그림들은 내가 알던 러시아 문학과 달랐다.
1, 2관을 거쳐 2층의 ‘무드 풍경화’를 만나러 계단을 오를 때다.
계단 옆 강의실에서 러시아 소설가 막심 고리키에 대한 강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강의실로 발길을 돌렸다.
내 의식의 저편에 잠들었던 러시아 작가들이 먼지를 떠들고 깨어났다.
니콜라이 고골리, 이반 투르게네프, 안톤 체호프, 발렌틴 라스푸틴, 예브게니 옙투센코, 톨스토이….
향수에 못 이겨 강의를 끝까지 듣고, 다시 2층으로 올라가 자연에 개인 정서를 입힌 ‘무드 풍경화’들 앞에 섰다. 작가들에게 있어 자연은 그들이 살아가야 할 국토이며 자연은 숭고하며 때로는 고향이며 휴식처로 비친다. 자연은 분명 이데올로기보다 위대하다.
미하일 쿠가츠의 <먼 길>과 <귀환>, 전쟁에서 돌아온 아들과 남편과 아버지를 만나 얼싸안고 재회하는 한 무리의 군중 옆에 돌아오지 않는 ‘그 사람’을 기다리는 여인, ‘승전 속에서’라지만 전쟁이 저지른 비윤리와 이별과 죽음과 고통을 고발하는 쿠가츠의 작품 속에도 살아남은 자들이 가야할 한 줄기 방향이 보였다.
몇 차례 더 들러 러시아를 천천히 이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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