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독이 오르다
권영상
팔과 발목 부위가 빨갛게 붓는다.
모기에 물린 자국처럼 몹시 가렵다. 풀독이다. 처음엔 이게 모기에게 물린 거려니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모기에게 물린 것과 다른 점이 있다. 빨갛게 부은 상처가 촘촘하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가려움과 아픈 통증이 가라앉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서는 물집도 생긴다. 어린아이라면 긁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통증이 심하다.
요 열흘 전에도 그랬다.
그때는 풀독이란 걸 아예 몰랐으니 벌레 물린 데 바르는 물약과 파스만 발랐다. 사흘이 지나도록 효과가 없었고, 통증은 더 기승을 부렸다.
참을 수 없어 서울로 올라와 병원을 찾았더니 ‘풀독’이라고 했다.
시골에서 자랐으니 풀독이란 말은 들어봤다. 하지만 풀독에 걸려 보기는 처음이었다.
남들은 옻나무 곁을 지나거나 보기만 해도 옻에 걸린다는 데 나는 옻나무에 몸이 스쳐도 옮지 않았다. 그만큼 피부가 외부 접촉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풀독에 걸린 그때를 조심스레 되짚어 본다.
그날 나는 비트와 채소를 심은 밭둑 풀을 베었다.
고양이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물망을 쳐 놓았으니 밭둑에 풀이 무성했다. 생각 없이 반소매와 반바지 차림으로 풀을 베었다. 그거야 지난 10년 동안 해온 일이었다. 풀은 바랭이, 망초, 쑥, 명아주, 까마중이, 달개비, 강아지풀 뭐 그런, 어느 밭둑에서나 흔히 보는 풀이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씨앗을 맺은 키 큰 방풍을 베었다. 그들을 모아 안고 풀거름장에 가져가느라 풀과 접촉한 게 전부다.
아, 그 말고 또 생각할 것이 있다.
날마다 35도를 오르내리는 날씨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달 간 연속되는 폭염은 풀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겼을 듯싶다. 어쩌면 풀들도 생존을 위해 독성 물질을 최대한 생산했을 거다. 날씨가 더워질수록 고추가 매워지고, 날씨가 추워질수록 대파가 매워지는 것과 논리가 비슷할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이런 폭염은 나도 처음이다. 그러니 처음으로 풀에 당한 게 아닌가 싶다.
풀독에 당한 이유가 그 말고 또 있을 듯하다.
풀을 베려고 내가 낫을 들고 밭둑 앞에 앉을 때다. 그때 풀들은 내 손에 들린 낫을 보고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는가. 암만 식물이 영혼이 없다 해도 그런 상황에 직면하면 그들은 잔뜩 긴장했을 테고, 몸 안의 독성 물질을 잔뜩 뿜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을 거다.
그때에 내가 바로 걸려든 것 같다.
여러 날이 지나도록 가렵고 아픈 통증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렇지만 참아 본다. 풀독 처방약과 연고가 안성에 있는데 그걸 가지러 달려갈 순 없다. 참다 보면 지난날 흔적 없이 사라진 풀독 상처처럼 그냥 없어지겠지 하고 있다.
예전, 아버지가 마른 논둑에 쥐불을 놓으실 때면 “불 놓는다, 비켜라! 비켜라! 비켜라!” 하시며 논둑 벌레들에게 이르시던 말이 떠오른다. 밭둑에 자란 대수롭지 않은 풀일지라도 벨 때엔 그런 배려쯤 있어야 할 것 같다.
“너무 자라 그러니 풀 좀 베마! 풀 좀 베마! 풀 좀 베마!”
그렇게 세 번쯤 이르고 풀을 베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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