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내 몸에 찍힌 추억

권영상 2024. 8. 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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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찍힌 추억

권영상

 

 

 

아내가 안성으로 내려오는 날이라 수박을 한 덩이 사두었다.

냉장고에 쏙 넣을 수 있는, 둘이 먹기에 마침맞은 조고마한 수박이 마트에 따로 있었다. 예쁘게 생긴 그놈을 잘 씻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아내가 내려올 시간을 기다린다.

서울 집 근처에 있는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 백암까지 한 시간이다.

진천행 버스는 길옆 정류장에 사람을 내려놓고는 이내 가는 버릇이 있다. 누구나 그렇듯 버스가 떠나고 난 자리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은 외롭다. 그걸 생각해 개울 둑길에 차를 세워놓고, 정류장 표지 기둥에 기대어 서서 아내를 기다린다.

 

 

묘한 게 인생이다.

30대 초반, 그때의 신혼 생활도 오늘 같았다.

그때 나는 동해시에 있는 묵호읍에서 직장생활을 했고, 아내는 성남시에 직장을 두고 있었다. 청춘이 뭐라고, 아니 대체 무슨 배짱이 있어 우리는 아내가 다니는 학교가 가까운 서울 변두리 세곡동에 신혼집을 정해놓고 주말부부를 했다.

주말이면 주로 내가 묵호와 서울을 오르내렸다.

그리고 가끔 아내는 토요일이면 내가 하숙을 하고 있는 묵호로 내려왔다.

 

 

1주일에 한 번씩이거나 2주일에 한 번씩, 아니면 직장 행사가 겹치면 한 달에 한 번씩 만났다. 만나는 날을 빼면 나머지 모든 날은 서로를 기다리며 사는 시간이었다.

그 모든 날들은 대부분이 설렘과 그리움이었다.

1년이면 끝나겠지 했던 주말부부의 긴 고충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3년이 지난 뒤에야 간신히 끝났다. 그 시절은 오로지 진실로 부부가 되는 견습 시간이었다. 그 후, 행운이 있어 나는 서울에 있는 모 사립학교로 전직했고, 아내에게도 행운이 있어 직장을 경기도에서 서울로 옮기게 되었다.

비로소 우리는 주말버스를 버리고 정착했다.

 

 

오래 머물던 직장을 마치고, 늦은 나이에 행운이 있어 안성에 조고마한 집을 하나 얻었다.

텃밭이 있고, 조용히 기거할 수 있는, 주로 농사를 업으로 하는 마을 곁이었다. 처음엔 일 주일에 3일씩 내려와 머물던 것이 점점 늘어나 지금은 5일 아니면 대체로 1주일씩 머문다. 그런지도 벌써 올해로 11년째다.

 

 

안성에 머물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날은 바쁘다.

그간에 키운 작물들을 조금 조금씩 거두고, 어질러 놓은 집안팎 정리를 한다. 아내 곁으로 간다는 생각 때문인지 마음까지 들뜨고 몸이 더욱 바쁘다. 이 나이에 이 설렘이 어디서 올까, 주말부부로 지내던 젊은 시절의 추억에서 오는 게 아닐까 싶다.

한번 몸 안에 찍힌 추억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나를 안성으로 내려 보낸 것도 어쩌면 내 안에 잠복해 있던 그 추억의 숨결 때문이 아닐까.

 

 

인생이란 참 묘하다.

주말부부로 인생을 시작한 인연이 있다 하여 나이 먹은 뒤까지 주말부부로 살게 하시다니!

아내를 마중하느라 묵호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아내를 기다리던 그때의 내가 지금 진천행 백암 버스정류장에 서 있다.

버스가 도착하려면 아직 5분쯤 남았다.

“너무 힘들었어.”

그러며 버스 승강기를 내려올 아내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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