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새의 뼈처럼 간략한 동시

권영상 2024. 6. 22. 09:52

 

 

 

 

<동시먹는달팽이> 여는 글

 

새의 뼈처럼 간략한 동시

권영상

 

동시를 쓰며 살아온 지 오래 됐네요. 45년이나 됐군요. 참 무던히도 긴 세월이었네요. 20대 후반에 등단했으니 내 인생의 가장 푸른 시기를 동시 장르에 바쳐온 느낌입니다.

초기엔 왜 어른들이 동시를 쓰느냐, 그런 말을 듣기도 했지요.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써 온 걸 보면 내가 무던하거나 어리석거나 아니면 동년배 동시인들이 있어 주었고, 선배님들이 자리를 지켜 주셨기 때문이겠죠. 그 덕분에 지금은 시인이라면 누구나 동시집 한 권 갖고 싶어하는 때에 이르렀지요.

 

오랫동안 동시를 써온 덕에 어떤 글이든 쉬운 말로 따스하게 쓰는 법을 익혔지요. 그게 누구 탓인지는 몰라도 세상의 모든 글쓰기가 지금 그렇게 가고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친구들에게 동시집을 한 권씩 쥐여주면 재미있는 일이 일어납니다. 나이 먹은 그도 읽고, 그의 마누라도 읽고, 그의 손자도 읽고, 그의 늙으신 처제도, 처제의 친구도 읽으면서 동시가 이렇게 쉽고 진실한 글인 줄 몰랐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 까닭은 동시가 사람의 마음을 홀가분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새의 뼈처럼 간략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복잡한 모양을 단촐하게 탁 쳐내야 살아나는 문학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동시를 쓰면서 나름대로 이 단순한 멋을 익혔는데 참 좋읍디다.

 

근데 무엇보다 동시가 잘 읽히는 것은 그것의 출발이 따뜻한 위로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어른이 어린이에게 주는 글이니까 당연히 그래야 할 테지요. 누군가를 위로 하려면 세상이 흘러가는 흐름을 잘 읽어야 하지요. 그래야 뒤쳐진 이가 눈에 보이거든요.

위로는 가장 자그마한 말로, 가장 낮은 목소리로, 어쩌면 행간에 간신히 숨겨서 전할 때 그의 마음을 고요히 흔들 수 있지요. 새의 뼈처럼 가볍게 또는 진실하게.

 

<동시먹는 달팽이> 2024년 여름호 '여는 글'